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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아 작가 "소설은 인간과 본질에 가닿으려는 노력"

입력 2020.03.17. 17:25 수정 2020.04.01. 18:10
'검은 방' 펴낸 빨치산의 딸 정지아
정 작가는'고욤나무'로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재개한 후 이효석문학상(2006), 한무숙문학상(2009), 오늘의 소설상(2009) 등 굵직한 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의 주목을 받고 있다.  '봄빛' '행복' '숲의 대화' 등을 펴냈고 지금은 조선대에 출강 중이다.

날선 국가보안법이 시퍼런 위력을 발휘하던 90년대 중반 빨치산 활동을 했던 부모의 이야기를 다룬 실록소설 '빨치산의 딸'로 대중에게 강렬히 다가왔던 소설가 정지아씨. 그녀가  근작 '검은 방'으로 대중을 다시 만난다. 지리산 자락에서 어머니와 함께 자연과 소설을 일궈가는 작가를 만나 삶과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편집자 주 


정지아 작가의 신작 '검은 방'은 '사소한 인생'에 불멸성을 입혀 '또 다른 세상으로 건너뛸 수'있기를 염원하는 세상 모든 사소한 인생들의 소망이기도하다.

소설은 격변의 한반도 역사 현장에 온 몸으로 뛰어들어 빨치산으로 활동했던 '아흔 아홉'의 여인 이야기다. 그녀의 '검은 방'은 '한 평생의 기억이 살타래 처럼 풀려나온, 시간이 입체로 고여 있는 공간이자 그녀의 우주'다. 그녀는 자신의 우주가 된 건너편 방의 딸을 더 잘 보기 위해 방에 불을 켜지 않는다. 그녀의 방이 항상 어두운(검은) 이유다.

평론가 정은경은 소설을 '그녀'의 '좀처럼 끝나지 않은 전투'라고 이야기한다. 30년 전('빨치산의 딸') 산에서 내려와 우리와 함께 살기 시작한 '그녀'와 지리산의 '지'와 백아산의 '아'를 이어받은 작가가 빨치산의 길고 긴 전투를 여전히 치르고 있다는 설명이다. 정은경씨는 "깊은 통찰력을 거쳐 나온 작가의 '눈송이'같은 경쾌한 삶의 태도가 이 전투들을 시적인 감각으로 변형 시켜 놨다"고 말한다. 이 책은 한국문학을 해외에 알리기 위해 매년 우수한 작품을 영문과 한글로 함께 펴내는 K-픽션 시리즈 2020년 작으로 선정돼 지난 1월 선을 보였다.


후회하지 않는 인간을 그리다

그녀를 대중에게 '빨치산의 딸 (부제 '소설로 쓴 남한인민유격투쟁사')'로 각인 시킨 동명의 소설은 전남도당 조직부부장이던 아버지 고 정운창씨와 남부군 이현상 부대 정치지도원이었던 어머니 이옥남 여사의 삶을 다룬 작품이다. 출간 직후 출판사 대표가 구속당하고 판매금지는 물론 작가는 수배를 당했다. 2005년 두 권의 소설로 복간됐다.

작가는 "진보적 시각에서 반성하는 글은 있지만 자신의 삶이나 신념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 글은 없었다"며 "그런 갈증과 결핍에서 쓴 책으로 역사적 기록으로서 의미는 있지만 문학작품으로는 부족한 글"이라고 냉정하게 말한다.

20대 초반에 거침없이 쓰고 이후에 심각하게 문학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고.

그렇게 준비한 소설 '고욤나무'로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본격적인 작가의 길을 걷는다. '당시 진보진영을 얕잡아보는 경향에 대항하고 싶어 부러 조선에 응모'했단다. '빨치산의 딸'과 조선일보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독자들의 궁금증에 대한 그녀의 설명이다.


존경하는 사회주의자 아버지

소설가로서 뿐 아니라 한 존재로서 정지아는 사회주의자 아버지와 함께다. 고인이 되신 아버지는 평생이 멋지고 아름다웠던 사회주의자셨다. 당신의 믿음이나 삶의 방식에 한 번의 후회가 없던 아름다운 한 인간을 작가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작가의 집안은 증조할아버지시절부터 역사의 한복판서 살아왔다. 일제 강점기 증조할아버지 시절엔 구례군 문청면 일대가 다 집안 땅이었다. 3.1 운동 때 옥고를 치르셨고, 할아버지는 보수당이었지만 한국전쟁 때 마을 사람들을 대신해 군군에게 총살을 당했다. 철도공무원이던 아버지는 해방공간에서 친일파들이 득세하는 현실에 저항해 사회주의자가 됐다. 혁명가 아버지는 이념갈등 와중에도 인근 동네사람들을 보호해 전쟁이 끝나고도 존중과 보호를 받았다고 한다. 아버지에 관한 에피소드 하나. '아버지 민중이 그녀에게 남긴' 건 벼룩이다. 고달픈 서울살이 중 하루는 아버지가 밤늦게 갈 곳 없는 방물장수 아주머니를 모셔왔다. 방이 없어 난색을 표하는 어머니를 핀잔하며 하룻밤을 함께 했는데 그 아주머니가 벼룩을 옮겨주고 갔다는 것이다.


문학으로 이끈 굴레

"빨갱이 딸 주제에..."

영민하고 인정욕도 강한 초등 4학년 정지아에게 경쟁관계의 여자친구가 내뱉은 이 말은 그녀의 삶의 반경을 송두리째 바꾼다. 초등 2학년 때 아버지가 다시 구속이 됐어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버지가 잡혀간 후 몇 날 며칠을 우는 그녀에게 경찰관이 찾아와 '아버지는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달랬다. 뭔가 이상하지만 아버지가 잡혀가도 가난도 약점이 되지 않았던 그녀였다. 허나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농협 창고에 쓰인 '멸공방첩'이라는 네 글자가 옥죄고 들었다. 약점 잡힌 그 땅을 떠나고 싶었다. 엄마를 졸라 가난하고 지난한 서울생활을 시작했다. 연좌제로 사촌 오빠들이 취직도 못하고, 자신도 어떤 공부를 한들 꿈을 이룰 수 없다는 좌절감에 책 속에서 위로를 찾았다. 초등학교 때부터 교내 백일장을 휩쓸었지만 소설가가 꿈은 아니었던 그녀였다. 청소년기 분노와 좌절과 반항이 가져온 독서가 그녀의 생각을 살찌웠고 소설가로 안내했을 것이란다.


남과 다르다는 자각이 중요

"상처, 내가 남과 다르다는 자각이 사람에게 글을 쓰게하는 것 같다. 내 글의 원천은 어쩌면 가난과 이데올로기였다"는 작가는 "소설이란 인간과 사회의 본질에 가 닿으려는 노력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남과 다른 나의 미세하고 섬세한 감각'이 중요하다고 덧붙인다. 그녀는 "아무리 개인적인 것이라도 시대성이란 없을 수 없다. 본류인가 지류인가, 본류에 가 닿으려고 노력을 한다."고 강조한다.

최근의 그녀의 고민은 너무 고답적이지 않은가 하는 부문이다. 문학평론가 김양선씨가 정지아 소설 인물에 대해 '고욤나무처럼 그 존재가 미미하지만 오랜 세월을 견디면서 자기 몫이 생을 살아가는 윤리적 감각을 갖춘 인물들'이라고 찬사를 보냈는데 역으로 그녀는 '너무' 윤리적 인물들만 존재하는 것 아닌가 고민한다.

정 작가는 "지리산의 바람과 하늘아래 식물을 키우며 호박이 커가는 소리, 고추가 익어가는 모습에 깜짝깜짝 놀라는데 그런 이야기도 담아보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지리산=조덕진기자 mdeung@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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