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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도와 이태진, 그리고 문창극
김대원의 여의도프리즘
입력시간 : 2014. 06.23. 00:00


# 메이지 유신 직후, 신정권의 실력자 사이고 다카모리는 이런 제안을 한다.

"조선에 가 개국을 반대하는 왕을 꾸짖고 살해 당하겠다. 그럼 군대를 일으켜라"

마침 2년간 구미 제국을 돌아본 50여명의 이와쿠라 사절단이 귀국한다.

유럽에서 '침략'의 외교적 파장을 이해하고 돌아온 기도 다카요시와 이토 히로부미는 깜짝 놀란다.

그들은 사이고의 '정한론'을 유보시킨 후 조선을 '지도'할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을 서구 제국에 끈질기게 홍보한다.

조선은 스스로 근대국가를 만들 수 없으니 일본이 '보호'하지 않으면 러시아가 먼저 병탄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누군가의 표현대로 '게으르고 자립심 부족하고 남한테 신세지는 아주 글러먹은 디엔에이'를 가진 민족 쯤 되겠다.

유라시아에서 러시아와 '그레이트 게임'을 벌이던 영국은 일본의 논리에 귀를 기울인다.

일본이 영·미의 도움으로 러일 전쟁에서 승리하고 조선을 차지한 배경이다.

1592년 조일전쟁 이후 3백여년 만에 조선 강점에 성공한 일본 제국주의는 이를 합리화하는 이론을 다듬어 조선인들에게 주입시킨다.

바로 민족성론, 타율성론, 정체성론을 뼈대로 하는 '식민사관'이다.



# 2004년 서울대 이태진 교수는 다카하시 교수의 초청으로 동경대 학생들에게 메이지시대 한국사를 강의했다.

일본은 패전 후 동경재판을 통해 쇼와시대(1926~45)의 역사적 잘못은 국제적으로 인정했으나 메이지시대(1868~1912)는 영광의 역사라는 인식이 강하다.

이 교수는 대한제국이 무능하거나 근대화의 의지가 없어 망한 게 아니라 오히려 발전의 가능성을 보였기 때문에 일본이 조기 박멸책을 써 망하게 된 것이라는 증거와 사료를 3주간 7강으로 소개했다.

정조 사후 세도정치에 의해 약해진 것은 사실이나 소위 '이조 5백년' 전체가 '하나님의 진노를 살 정도로' 썩어빠진 세월은 아니었다는 얘기다.

한 학생은 리포트에서 "대부분 처음 들어본 얘기"라며 "역사상이 흔들린다"고 토로했다. 함께 강의를 들었던 모 교수도 "(일본이) 그런 짓을 해놓고 어떻게 근대화를 했다고 할 수 있느냐"고 부끄러워 했다.

동경대 교수들은 이 교수에게 "이번 강의가 씨앗이 돼 훗날 예상치 않은 힘이 만들어 질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식민사관의 뿌리, 동경에서 그 토대가 허물어지기 시작한 역사적 순간이었다.



# 파장을 불러온 문창극 총리후보의 발언은 식민사관 논쟁을 일약 국민적 관심사로 끌어올렸다.

한국역사연구회 회장인 정연태 가톨릭대 교수는 "문 후보의 역사 인식은 전형적인 서양 우월론, 식민사관, 극단적 반공논리, 잘못된 기독교 구원신앙이 결합된 최악의 조합"이라고 말했다.

주진오 상명대 교수는 "해방이 되면서 자신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친일에서 반공으로 말을 갈아탄 극우세력의 전형적 논리"라고 비판했다.

문 후보가 사태 초기, '사과는 무슨...'이라고 툭 던진 말에선 비슷한 부류끼리 교류하면서 자신의 논리에 전혀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아온 그의 '상식'이 드러난다.

일제 강점기 조선사편수회의 쓰다 소우키치와 그의 와세다대 제자인 이병도로 전수된 식민사관은 상당기간 한국 사학계의 주류로 행세할 정도로 그 뿌리가 깊다.

노론→친일→반공·친미→이승만·박정희 숭배로 면면히 이어진 기득권 세력 일각의 정서와도 맥이 닿는다.

일제의 마지막 조선총독 아베 노부유키의 말이다.

"우리는 패했지만 조선은 승리한 것이 아니다. 장담하건대, 조선민이 제정신을 차리고 찬란하고 위대했던 옛 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백년이란 세월이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조선민에게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 놓았다."

언론인 문창극의 교회강연 내용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놀랐다.

국민들이 우리 사회 일부 기득권층의 내면, 그 비밀의 일단을 엿보게 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서울취재본부장


무등일보 zmd@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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