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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묘지에 북한군 시신 12구 묻혀있다?
5·18역사 왜곡·폄훼 도를 넘었다 -지만원 등 세력에 대한 반론 <끝>
입력시간 : 2015. 05.18. 00:00


'무명 열사 묘' 5기 불과 숫자 파악도 못한 '낭설'

무명의 묘는 모두 11기였다

광주시는 2001년 무명의 유골을

민주묘지로 이장하면서

실종·장기가출·행방불명 가족 282명의

유전자 대조 작업을 벌였다

그 결과 6명의 시신을

21년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냈다

나머지 시신 중 40세 남자, 4세 남자아이,

목포서 시위하다 사망한 남성 등

적어도 3구는 북한 특수군과

연관 짖기 어려운 기초 자료가 있다

지만원은 5·18국립묘지에 “한국인으로 판명되지 않은 시체가 12구 있습니다. 이 역시 북한특수군 손에 쥐어진 확실한 증거(smoking gun)이 아닐 수 없습니다"라고 확언하고 있다. (북한특수군 600명을 증거하는 18개의 Smoking Gun #13)

지만원의 '솔로몬 앞에 선 5·18' 131쪽에는 “5·18 광주에 북한 사람들이 왔을 것이라 믿게 하는 또 하나의 사실이 있다. 대한민국 국적이 아닌 시체 12구가 아직도 5·18묘지에 묻혀 있다는 사실인 것이다. 얼굴은 같은 민족인데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라면 이는 북한 사람일 것이라는 것이 세상의 상식일 것이다. 탈북자의 증언에서도 나와 있다”고 밝혔다.

사실이 아닌 허위를 사실이라고 주장할 때는 그것에 대한 정확한 사실을 근거로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지만원은 전혀 사실 무근의 것을 사실이라고 우기고 있다.

광주시 북구 운정동에 있는 국립 5·18묘지에는 이름이 밝혀지지 않는 묘지가 5개가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지만원은 북한사람으로 보이는 묘지 12개가 있다고 억지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자초지종을 살펴보기로 하자.

5·18민주화운동 당시 산화한 영령들이 묻혔던 5·18묘지는 일반적으로 '망월동 묘지'라 불려왔다.

당시 가족과 친지들은 항쟁 와중에서 공포와 분노에 떨며 처참하게 훼손된 주검을 손수레에 싣고 와 이곳에 묻었고,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거나 5월 27일 도청 함락 때 희생된 주검 등 총 126구는 청소차와 손수레에 실려와 5월 29일 광주시립공원묘지 제3묘역에 묻혔다.

이 망월묘역은 5월 29일 조성된 이후 2년여 동안은 큰 변화 없이 유지되었다.

그 뒤 이곳이 '민주성지'로 세계적으로 각광받게 되자 신군부 정권은 묘를 파내게 하는 등 묘지 자체를 없애려 획책했다.

1983년 5월부터 군사정부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설립됐던 전남지역개발협의회의 주도하에 망월묘역 해체 작업이 시작됐다.

전남지역개발협의회는 5·18민주화운동 관련 민간인 사망자 유족들에게 이장을 대가로 위로금 1천만원과 이장비 50만원 지급을 제의하는 등 경제적인 회유책을 구하고 다양한 경로와 방법을 통해 사회적 압박을 가함으로서 망월묘역을 해체하는데 적극적인 활동을 했다.

망월묘역 해체작업은 1984년까지 지속되었는데 그 결과 26기가 이장됐다.

그러나 희생자 유족회와 시민사회 진영의 저항이 거세짐에 따라 더 이상 계속되지 못하고 중단됐다.

전남지역개발협의회는 유족회의 지속적인 항거로 인해 희상자의 이장 여부와 무관하게 총기사용, 방화 등 적극 가담자를 제외한 모든 민간이 사망자 유족에게 위로금을 지급했다.

그리고 이장했던 일부 희생자 유해가 망월묘역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망월묘역은 5·18민주화운동을 기억하고 상징하는 장소로 점차 확고한 자리매김했고 1980년 이후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촉발시키고 확산시키는 메카로 발전되었다. 진실을 호도한 신군부의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부정적 규정과 이미지가 재평가되고 멍에가 점차 벗겨지게 됐다.

또 신군부의 지배 담론과 억압에 대립된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시민사회 진영의 다양한 담론과 주장 그리고 사회운동이 광범위하게 전개되면서 망월묘역의 상징성은 더욱 선명성과 권위를 획득하게 됐다.

군사정부가 끝나고 민간정부인 김영삼정부가 들어서면서 1993년 5월 13일 김영삼대통령은 광주민주화운동 담화를 발표하면서 “망월동 묘역은 민주성지로 가꾸어 나갈 수 있도록 묘역의 확장 등 필요한 지원을 다할 것이다”라고 해 망월묘지 성역화 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다.

1994년부터 묘지 성역화 사업을 추진해 5만 여평의 부지에 3년에 걸쳐 사업이 진행되어 1997년 새로운 5·18묘지가 완성되자 시립묘지 제3묘역에 묻혔던 영령들은 치욕의 17년을 뒤로하고 새 묘역으로 이장됐다.


구 묘역은 당시의 참상을 처절하게 안고 있는 곳으로 원형을 복원하여 겉모습 그대로 보존하고 있으며 현재는 사적지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2001년 12월 21일 국회에서 5·18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이 제정됨으로써 마침내 5·18민주묘지는 2002년부터 국립묘지로 승격됐으며 이 땅에 다시는 불의와 독재가 발붙이지 못하도록 하는 준엄한 역사교육의 장으로서 자유와 민주 그리고 정의를 갈망하는 세계인의 가슴 속에 민주화의 성지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광주시 북구 운정동 국립 5·18 민주묘지 4묘역에는 80년 5월 당시 희생된 수 백명의 희생자 중 주인 없는 5기의 묘가 있다.

2001년 신 묘역(784기)으로 이장하면서 신원확인을 위해 실시했던 유전자 조사에서도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은 사람들이다.

무연고 희생자 묘지 앞 상석에는 사망자의 이름이나 추모의 글 대신 ‘무명(無名)열사의 묘’란 비명(碑銘)이 고인들의 이름을 대신하고 있다.

국립 5·18 민주묘지 관리사무소가 부여한 이 비명이 이들의 이름이 되고 만 것이다. 이들은 지난 1980년 5월 당시 희생돼 5·18 구 묘지에 묻혔다. 당시 무명열사의 묘는 모두 11기였다.

광주시는 2001년 10월 무명열사의 유골을 구 묘지에서 민주묘지로 이장하면서 이들의 신원을 찾기 위해 실종자, 장기 가출자, 행방불명자 가족 282명의 유전자 대조 작업을 벌였다.

그 결과 고(故) 권호영(당시 16세)· 김기운(당시 17세)· 김남석(당시 18세)· 김준동(당시 16세)· 양민석(당시 20세)· 최숙일(당시 21세)씨 등 6명의 시신을 21년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냈다.

그러나 5명의 연고자는 현재까지 찾지 못하고 있다. 이름, 주소 등 기본적인 자료조차 없는데다 영정사진도 없기 때문이다. 민주묘지의 한 직원은 연고가 없는 것으로 봐서 다른 지역에서 온 노동자나 홀로 사는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그나마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들은 눈물과 한탄 속에서도 살아남은 가족의 기억 속에서 되살아나지만, 이름 조차 찾지 못한 이들은 점차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고 있다.

광주시청 관계자는 “28년이 넘도록 이들 무명열사의 가족을 찾아주지 못하는 것이 미안할 뿐”이라며 “지난 2001년 이후 행불자·가출자 가족의 유전자를 수집, 무명열사의 가족을 하루 빨리 찾아 이들의 원혼을 달래주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

나머지 5구의 시신 중에서도 40세 가량의 남자, 4세 가량의 남자아이, 목포에서 비무장 상태로 차량 위에서 시위하다 추락해서 사망한 남성 등 적어도 3구는 불순세력 즉 북한 특수군과 연관 짖기 어려운 기초 자료가 제공돼 있다.

사망자, 실종자가 수 백명이 되는 대형 참사에서 모든 시신의 신원을 확인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삼풍백화점 사건에서 신원미상 시신이 30구, 대구지하철 참사에서 신원미상 시신이 6구인 채로 아직도 남아있다는 점을 비춰 보면, 5.18 민주화운동의 신원 미상자는 다른 사건에 비해 전혀 많은 편이 아니라고 법의학계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안종철 광주시 인권옴부즈맨


무등일보 zmd@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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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2 개)
독 자 의 견 제 목이 름작성일
2광주 5.18대책위와 무등일보에 북한군 개입 공개토론 제안 남자2015.05.19 (23:45:14)
1이 사람들 찾아서...마랑2015.05.19 (17:3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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