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바람에 허물어진 돌담 수없이 다시 쌓으며 돌담 지켜와'

입력 2017.05.10. 00:00
전남도 슬로시티
1)담양 창평면 삼지천마을…자연의 길을 따라 켜켜이 쌓아올린 돌담길
느려서 더 행복한 봄 여행, 속도가 아닌 방향에 의미를 찾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이 아우성치는 봄이 무르 익어가면서 시원한 여름이 기다려진다

도시에서의 바쁜 일상속에서 소중한 사람과 슬로시티로 느려서 더 행복한 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우리나라의 슬로시티는 담양군 창평면 삼지천마을, 완도군 청산도, 신안군 증도, 경남 하동군 악양면, 충남 예산군 대흥면, 전북 전주 한옥마을,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경북 청송군 파천면, 경북 상주시 이안면, 충북 제천시,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등 11곳이 있으며, 전남에는 3개소가 운영중이다.

전남도에서는 2017년 12월 재인증을 대비해 지난해 국제슬로시티연맹 한국슬로시티본부 관계자를 초청해 재인증 준비를 위한 워크숍을 개최하는 등 재인증 준비에 대비하고 있다.

특히 올해 재인증은 기존의 지역(읍면)단위에서 전 자치단체로 인증범위를 확대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최근 빠르게 변화하는 4차산업혁명의 물결과 호응하면서도 슬로시티 만의 독특한 향기를 브랜드화해서 현대인들에게 쉼을 주는 전남만의 슬로시티로 발전해 나가기를 바래본다

피부로 전해지는 봄날의 공기를 마시며 사랑하는 사람과 손을 꼭 잡고 속도가 아닌 방향에 의미를 두는 남도의 슬로시티 3곳을 3회에 걸쳐 소개한다.

담양 창평 삼지내마을

2007년 신안 증도, 완도 청산도 등과 함께 아시아에서 처음 슬로시티로 지정된 창평 삼지내마을 사람들은 500년 전에 돌담을 쌓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시간과 바람에 허물어진 돌담을 수없이 다시 쌓으며 돌담을 지켜왔다.

그런 까닭에 돌담의 모양이나 그 재료도 제각각이다. 어느 곳은 돌과 흙을 번갈아 가며 쌓은 줄눈 모양의 담장이, 또 어느 곳은 대충 막 쌓은 것 같은 담이다.

흙과 돌을 함께 사용한 곳도 있고 돌만 사용한 곳도 있다.

그러나 정작 500년 동안 이곳 사람들이 지켜온 것은 돌담이 아닌 물길이었다. 내(川)가 오롯이 바로 흐르지 않고 에둘러 천천히 흐르는 것은 더 많은 생명을 위한 자연의 배려일 터, 이곳에 삶의 터전을 만든 이들이 그러한 자연의 뜻을 따라 담을 쌓았기에 물길을 닮은 돌담길이 되었다.

슬로시티 삼지내 마을 사람들은 이렇듯 자연의 길을 따라 켜켜이 쌓아올린 돌담길을 지키며 자연을 닮은 삶을 살고 있다.

창평 삼지내 마을에선 서둘러 가라 재촉하는 일 없다. 길에서도 쉬어가라 한다. 눈으로 부지런 떨지 말고 돌담에 기대어 앉아 하늘을 보며 옛 시인의 말처럼 ‘돌담에 소색이는 햇볕’을 느껴보라 한다. 게으른 놈이 쌓은 담이니 그렇게 보라 한다.

즐거운 여행은 게으름에서 시작한다. 느린 만큼 더 즐길 수 있는 까닭이다. 밥을 빨리 먹든 천천히 먹든 배는 부를 터이지만, 느리게 먹어야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이치다.

1코스- 마을을 느끼게 하는 삼지내 돌담길

▶삼지내마을 돌담

삼지내 마을에 들어서면 담도 굽어지고, 길도 굽어지고, 물도 굽어 흐르는 그윽한 향토의 멋과 색이 눈앞에 나타난다. 3.6km의 굽이진 골목길은 급한 마음에 직선으로 걷다 생긴 생채기를 아늑함과 포근함으로 감싸준다.

담쟁이넝쿨로 뒤덮인 돌담, 가로로 흙 줄무늬가 있는 돌담, 대충 쌓아올린 것 같은 돌담 등 몇 걸음마다 돌담의 모양에 따라 골목의 느낌이달라진다.

그러한 돌담과 그 너머로 보이는 고즈넉한 고택을 눈으로 어루만지느라 걸음이 절로 느려진다.

▶고재선 가옥 #그림1중앙#

돌담길이 꺾여 들어간 곳에 있어서 언뜻 지나치기 쉽다. 대문이 길가에 있지 않고 골목처럼 꺾어진 곳에 있는 까닭이다.

나쁜 기운은 들지 말고, 좋은 기운은 빠져나가지 말라는 바람으로 그렇게 지은 것이다. 열린 대문으로 들어서면 붉은 유홍초가 넝쿨 사이에 사랑스럽게 반겨주고, 장독대와 비 오는 날 발이 젖지 않도록 땅에 깔아놓은 기왓장이 옛 정취를 선사한다.

▶달팽이 가게

창평현청 맞은편에 있다. 가게 앞에 물레방아가 정겹게 맞아준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면 작은 흙으로 빚은 인형이 줄지어 서서 보초를 서고 있다. 이곳에선 상품이 아닌 느림을 판다. 한과 쌀강정, 나물 등 건강한 슬로푸드와 천연염색품, 죽공예품, 다기, 꿀초 등 작은 가게지만 볼거리는 많다.

▶고재환 가옥

달팽이 가게에서 나와 오른쪽으로 걸어가다 왼편의 따뜻한 햇살에 온기를 품은 토담 길을 따라가면 고재환 가옥에 이른다. 세독충정(世篤忠貞:나라를 위하고 바르게 살라)이라는 의병장 고경명의 말씀은 창평 고씨 집성촌의 촌훈과 같았다. 고재환의 아버지이자 민족운동의 산실, 창평의숙을 세운 고정주의 조카이기도 한 고광표는 각종 공산품을 판매하고 저리 융자를 실시했다. 이 때문에 고리 대금업으로 배를 불리던 일본 자본이 창평에는 들어올 수가 없었다.

▶고정주 고택

고재환 가옥 맞은편에 있다. 구한말 민족운동의 근원지라는 점에서 현대사적 의미가 담긴 고택이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을사늑약 무효와 을사오적 처단을 상소했던 고정주는 상소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낙향하여 이곳에 터를 잡고 국권 회복을 목적으로 상월정(이후 창평 객사로 이전, 현 창평초교)에 영학숙(1907년 창평의숙으로 확대 개편)을 설립하여 민족혼을 일으키고 1907년에는 호남학회 회장이 되어 애국계몽운동을 선도했다. 고정주 고택은 전남지방에서는 보기 드문 ㄷ자형 고택이다.

2코스 창평의 보물상자 싸목싸목길

▶남극루

방문자센터에서 큰길로 나가 왼편으로 꺾어지면 그네와 함께 있는 높다란 누각이 있다. 1830년에 지은 것으로 원래 현 창평면사무소 앞인 옛 창평동헌 자리에 있었으나 1919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지었다. 마을 사람들은 양로정(養老亭)이라고 부르는데, 마을 어르신들의 사랑방으로 사용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남극루에 오르면 녹색 들판과 삼지내 마을의 평화로운 모습을 볼 수 있다.

▶용운지 #그림2중앙#

마을의 대문인 일주문에서 삼지내 마을 반대편을 바라보면 학의 두 날개 처럼 마을을 보듬고 있는 월봉산 능선이 보인다. 그곳을 향해 나 있는 길을 따라 산을 오르면 싱그러운 숲길을 지나 용운지가 나온다. 달뫼미술관이 자리한 용운마을, 달팽이마을 텃밭 밥상에 새비찌개가 유명한 데, 이곳에서 잡은 새우로 지금의 명성을 얻었다.

▶상월정

용운지에서 등산로를 따라 숲의 향기를 맡으며 걸어가면 창평 인재의 요람인 상월정이 나온다. 이곳은 오늘날 고시원과 같은 곳이다. 항일 운동가인 고하 송진우를 비롯해 초대 법원장을 지낸 김병로, 인촌 김성수, 국무총리를 지낸 이한기,고재필 등이 이곳에서 공부를 했다고 하니, 명당 중의 명당인 셈이다.

▶포의사

1895년 일제가 경복궁을 침범하고 국모인 명성황후를 시해하자 통분을 참지 못하고 의병을 일으켰던 고광순 의사와 함께 의병활동을 펼쳤던 분들의 고귀한 뜻을 기리는 공간이다. 기념관 앞에 서면 시원스레 창평뜰이 한눈에 들어온다. .

3코스 조용하고 맑은 사색의 길 명옥헌길

▶명옥헌 #그림3중앙#

명옥헌으로 가는 길은 실개천이 흐르는 평화로운 들녘과 아름다운 가로수 길을 지나는 길이다. 방문자센터에서 빌려주는 자전거를 타고가는 것도 좋다. 언제 가도 좋은 곳이지만, 배롱나무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여름이 가장 아름답다.

▶후산리은행나무

명옥헌 앞에는 키가 30미터에 달하는 은행나무가 있다. 늦가을,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어 떨어질 때에 그 아래 서 있으면 가슴이 벅차오를 만큼 아름답다. 인조대왕이 오희도를 만나기 위해 이곳에 왔을 때, 이곳 은행나무에 말을 맸다고 해서 이 나무를 인조대왕 계마행이라고도 부른다.

4코스 알콩달콩 사람 사는 맛 미암길

▶창평 오일장과 창평국밥.#그림4중앙#

미암길은 창평의 대표 먹거리를 맛볼 수 있는 창평 오일장에서 시작한다. 5, 10일 장으로 열리는 창평 오일장은 전통의 멋을 살리고 현대식 시설을 갖춘 전통시장이다.

없는 것은 없지만, 있는 것은 다 있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굴곡져 있는 우리 어머니들의 미소는 덤이다. 이곳에서는 국밥이 인기다. 심사가 복잡하더라도 국밥 한 그릇에 소주 한 잔이면 속이 따뜻해지면서 마음이 풀리곤 한다.

▶미암사당·모현관(미암일기)

역사적 의미도 있지만 그대로의 모습도 매우 아름다운 곳이다. 미암유물전시관이라는 이정표를 따라 마을 안으로 들어가면 600년 된 느티나무를 비롯한 나무들이 울창한 잎사귀로 햇볕을 가려준다. 그리고 그 끝에 뱃놀이를 하는 것처럼 푸른 잎사귀를 타고 있는 듯 연꽃이 화사하게 피어 있고, 그 뒤로 모현관이 보인다. 모현관은 마치 양 갈래로 곱게 머리를 땋고 유관순 열사와 같은 옷차림을 한 앳된 여학생이 문을 열고 나올 것 같은 모습이다.

1959년에 지어진 모현관을 짓기 위해 화순에서 화강암을 소달구지로 실어왔고 내로라하는 석공들이 돌을 다듬었다. 편액은 의재 허백련의 글씨다.

슬로시티 방문자센터

내 집에 드는 손님을 언제나 귀하게 여겨 대접했던 조상의 지혜를 빌려 만든 창평 삼지내 마을의 사랑채 공간이다. 보고 경험하고 배워보고 전수받을 수 있는 슬로라이프의 콘텐츠로부터 맛집에 이르기까지 창평의 모든 정보는 슬로시티 방문자센터에 있다.

담양군 창평면 돌담길 56-24. 061-383-3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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