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시평- 여기에 무엇을 더할 수 있는가

@무등일보 무등일보 입력 2018.01.15. 00:00

이화경 소설가

삼십대 초반의 다큐멘터리 감독은 하던 일을 접고 멋지고 아름다운 이야깃거리를 찾아 무작정 밖으로 나갔다. 몇 개월 동안을 그저 헤매기만 하다가 아프리카의 어느 도시 레코드 가게 주인을 만나게 됐다. 가게 주인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젊은 세대가 열광하는 가수가 있는데, 정작 가수의 생사여부도 행방도 알 수 없다는 미스터리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자유와 저항과 사랑의 메시지를 담은 2장의 음반만 내고 자취를 감춰버린 가수의 음악은 독재정권에 저항하고 인종차별을 혁파하려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젊은 피와 심장을 뜨겁게 달구었다고 했다. 젊은 감독은 마치 신데렐라 동화처럼 극적이고 아름다운 이야기, 실화이기에 더욱 감동적인 이야기를 장편 다큐멘터리로 제작하기로 결심했다.

정치적 독재와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1970년대, 미국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건너온 한 소녀가 들고 온 음반 한 장이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는 내용으로 다큐멘터리의 이야기는 시작한다. 전혀 알려지지 않은 가수의 노래들은 대중들의 상상할 수 없는 사랑을 얻게 됐다. 이미 대중들의 마음속엔 슈퍼스타임에도 불구하고 가수에 대한 정보가 전무한 상태인지라 무대 위에서 자살을 했다는 비극적인 소문까지 떠돌았다.

자신들의 청춘과 삶과 꿈에 감동과 위로를 주었던 빛나는 별이자 전설이자 너무도 멋진 아티스트를 열혈 팬들은 진심으로 알고자 여정을 떠났다. 가수를 찾아나서는 여정을 촉발하게 한 질문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그가 어떻게 죽었을까?'였다.

가수의 노래 가사만을 들고 끈질기게, 어떤 난관에도 포기하지 않고 행적을 찾아나서는 과정 자체가 바로 다큐멘터리에 빠져들게 하는 동인이다. 도대체 가수는 어떻게 죽었을까? 살아 있기는 한 걸까? 그저 슈가맨으로만 불렸던 가수의 행적을 쫓아간 뒤에 마주치게 된 진실은 어떤 것이었을까?

최근에 우리나라에서도 한 가수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을 밝히겠다는 의도를 담은 다큐멘터리가 제작 방영됐다. 때로는 서러운 물기가 가득한 목소리로 청춘의 사랑과 이별과 추억을 노래하고, 때로는 시대의 울분과 저항을 특유의 서정적인 목소리에 실어내고, 때로는 인생의 시기마다 겪게 되는 애환을 공감하는 애잔한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들로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던 가수.

벼락처럼 다가온 그의 부음을 들었던 때의 충격과 전율이 지금도 고스란히 느껴진다. 20여 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 그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 공방이 뜨겁게 이루어지는 상황을 바라보는 심정은 착잡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의 노래 가사처럼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살아가지만 '눈앞에 글썽이는 너의 모습' 때문에 눈가에 이슬방울이 맺히는 슬픔이 좀체 진정되지 않는 심정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아티스트를 추적하는 여정이 생전의 예술적 자취와 창의성과 영감과 열정을 확인하는 것이었기를, 한 존재가 남긴 미학적 흔적과 감동스런 족적을 애틋하게 재구성하는 방식이었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다. 그의 이름과 노래를 검색할 때, 사망원인이나 죽음의 진실 같은 단어와 저작권료와 그의 아내 이름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것을 볼 때 착잡하기 이를 데 없었다.

물론 그가 부른 노래가 누추하고 볼품없는 지상에 강림한 천사의 작품이라거나, 천재성과 탁월한 미적 감수성을 천부적으로 지닌 대단한 예술가로 그를 추앙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신격화하자는 말은 더더구나 아니다. 다만 어떤 쓸쓸한 날의 마음을 위무해주고, 세월의 덧없음을 느낄 때 누구도 줄 수 없는 공감의 목소리에 몇 분간 멈춰 서게 해주었던 가객의 삶과 죽음이 음모와 치정과 스캔들로 덧칠되는 게 몹시 볼썽사납다. 애정과 추억과 애도는 누가 더 먼저 많이 가졌느냐는 기득권의 싸움도, 시시비비를 가르는 재판정도 아니다. 그를 팩트 체크를 해야만 하는 확실성의 볼모로 삼을 때, 새롭게 해석되고 재조명돼야 할 그의 노래들은 실종되고 말 것이다.

마지막으로, 슈가맨을 찾아간 끝에 감독이 마주한 진실은, 음악 말고는 아무 것도 없는, 음악 그 자체인 사람이었다고 한다. 감독은 묻는다. 여기에 무엇을 더 할 수 있는가라고 말이다. 그 가수가 만든 음악은 완벽하고, 그렇기 때문에 그는 여전히 사람들에게 미스터리한 존재로 남는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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