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시평- 정약용의 특별한 해

@무등일보 무등일보 입력 2018.01.22. 00:00

김태희 다산 연구소 소장

200년 전 1818년은 정약용에게 특별한 해였다. 기약 없이 계속되던 유배가 풀려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18년 만이었다. 1801년 겨울, 40세였던 그는 11월 9일(이하 음력) 서울에서 출발해, 11월 3일 유배지 강진에 도착했다. 그리고 1818년 9월 2일 강진을 출발, 9월 14일 한강변 고향집에 돌아왔다. 귀양 가는 길은 15일이 걸렸는데, 귀향하는 길은 13일이 걸렸다.

어느덧 그의 나이는 57세가 돼 있었다. 돌아가는 그에게는 그해 봄에 완성한 '목민심서'가 있었다. 한 해 전에 쓴 '경세유표'도 있었다. 유배 막바지에 그의 대표적 저서를 완성해 고향집에 갖고 돌아온 것이다. 그에게 유배기간은 시련에 좌절하지 않은 성취의 기간이었다.

그 자신의 설명에 의하면, '경세유표'는 국가경영 전반에 걸쳐 제도 개혁론을 제시하는 것인 반면, '목민심서'는 현행 제도라도 지방 수령이 운영을 잘 한다면 백성에게 혜택이 돌아가기를 기대한 것이다. 이 두 책의 관계를 보면, 정약용이 이상과 현실을 잘 조화시킬 줄 아는 사람임을 알 수 있다.

고고한 담론을 늘어놓거나 제도 탓만 하면서 실천은 소홀할 수도 있는데, 정약용은 이상을 추구하고 대안을 제시하면서도 당장은 실천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다른 사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과거제를 그토록 신랄하게 비판했지만, 제자들에게 과거공부를 시켰다. 그는 과거시험이 진정한 학문을 할 수 없게 하고 실용성이 없다고 비판했다. 그렇지만 현재의 제도 아래서 재주 있는 젊은이가 능력을 펴고 보람 있는 일을 하려면 과거에 급제해 관직에 나가는 게 낫다며 권했던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전설같은 이야기에 의문이 생긴다. 베트남에 가면 여행가이드들이 전하길, 베트남의 호찌민이 '목민심서'를 머리맡에 두고 읽었다는데 과연 사실일까? 제도개혁보다 운영에 주안을 둔 '목민심서'의 보수적 성격을 생각한다면 믿을 수 없다. 호찌민처럼 혁명적인 사상을 찾아다니던 사람에게 관심을 끌거나 답을 줄 만한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왠지 평가의 권위를 외부에서 찾으려는 행태가 아닌가 싶다.

'목민심서'가 제도 개혁보다 제도를 운영하는 사람에 주목한 책인데, 제도와 운영의 관계를 생각하게 하는 구절이 더 있다. 율기(律己)편 칙궁(飭躬) 조항에서 이런 구절이 있다. "일을 처리할 때 언제나 선례만을 좇지 말고, 반드시 백성이 편안하고 이롭게 법도 내에서 변통을 꾀해야 한다. 만약 그 법도가 나라의 기본 법전이 아니면서 현저히 불합리한 것은 고치지 않으면 안 된다."

또 봉공(奉公)편 수법(守法) 조항에서는, 백성에게 이익인 것은 융통성을 발휘하라고도 했다. "언제나 한결같이 법을 지키면 너무 구애받는 때가 있다. 다소 넘나듦이 있어 백성에게 이익이 되는 것은 옛사람도 상황에 따라 알맞은 것을 택할 때가 있었다."

운영의 묘를 발휘하라는 것이요, 현저하게 불합리한 규정은 고치라는 것이다. 그 기준으로 백성의 이익을, 그 한계로 나라의 기본 법전을 제시했다. 실정법이라 해도 그 해석이나 적용에서 상위 법규범의 본래적 목적과 보편적 가치에 입각해야 한다. 때로는 공동체적 가치와 헌법정신에 따라 실정법을 고쳐야 하는 경우도 있다. 법이나 제도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법이나 제도의 존재 의의가 어디에 있는가 생각해야 한다.

최근 법규범의 최고법인 헌법 개정이 논의된다. 완벽한 헌법은 없다. 더욱이 헌법은 추상적인 조항들로 구성돼 그것이 법률 차원에서 어떻게 구현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혹 완벽해 보이는 헌법도 현실에서는 규범력을 잃고 장식에 불과한 경우도 있다. 혹 다소 부족한 헌법이라도 운영의 묘를 살릴 수 있다. 명시적 조항이 있지 않더라도 운영에 따라 공동체의 공감을 얻어 규범력을 얻을 수도 있다.

올해는 정약용의 귀향과 '목민심서' 저술 200주년을 기념하는 이러저러한 행사가 예상된다. 이런 기회를 통해 '경세유표'와 '목민심서'의 정신을 헤아려 보면서, 무엇이 국민을 위한 제도인지, 무엇이 국민을 위한 제도 운영인지 생각해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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