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시평- 한국판 미투 캠페인을 지지한다

@무등일보 무등일보 입력 2018.02.05. 00:00

맹수진 프로그래머

2017년 10월, 할리우드의 거물 영화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이 엔터테인먼트 산업 내 젊은 여성들을 상대로 30년 가까이 성추행을 해왔다는 사실이 처음 기사화됐을 때만 해도 이 사건이 이토록 거대한 파장을 일으킬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안젤리나 졸리, 기네스 팰트로같은 세계적인 스타들까지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추행 고발 대열에 합류하며 '미투 캠페인(#MeToo)'을 이끌었지만, "저 동네도 여기와 별 다를바 없구나" 정도로 무심히 반응하면서 이것도 잠시 동안 매체를 시끄럽게 하다 흐지부지 되겠지,라고 심드렁하게 넘겼다.

우리에게는 '장자연'이라는 이름으로 대변되는 어두운 경험이 있다. 연기자의 꿈을 키우던 여성이 소속사 대표로부터 인신매매와 다를 바 없는 성상납을 수없이 강요당했고, 견디다 못한 그녀는 자신이 겪은 일을 고발하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수사에 착수하기에 충분한 자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유서에 등장한 가해자 대부분은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리되었다. 어느 누구도 그 판결을 신뢰하지 않았다. 애초에 수사할 의지가 없으니 증거를 찾지 않았고 그 당연한 결과로 무혐의 처리되었다는 심증만 견고해질 뿐이었다. 이러한 결과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엽전들의 믿음만 더 공고하게 만들어 주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한국 문화예술계에서는 문화권력의 성폭력을 고발하는 캠페인들이 있어 왔다. 하지만 언제나 사건은 유야무야되고 피해자들만 2차 피해로 더욱 고통 받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미투 캠페인(#MeToo)'이 바다를 건너 한국에서 확산된다 한들, 가해자들의 죄를 물어야 할 사법 제도가 피해자들의 증언과 고발의 목소리를 외면한다면 피해자들의 용감한 증언은 과연 어떻게 보상받을 수 있을까?

나는 나이와 직업을 불문하고 대부분의 여성들이 자신의 삶 속에서 수 차례의 성폭력(성폭행과 성추행, 성희롱을 포함하는)을 경험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성폭력의 경험을 드러내는 것이 어려운 이유를 여성들은 모두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고립되고 개별적인 경험은 이 싸움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폭력을 고발한들 가해진 폭력의 후유증이 그대로 남을 뿐 아니라 용기를 낸 고발자들은 2차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그러니 어느 누가 또다시 용기를 내 증언할 수 있겠는가? 이러다가 몸 담은 업계에서 영원히 사장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서 말이다.

하지만, 며칠 전 CNN을 통해 목격한 미국 체조대표 팀닥터 래리 나사르의 선고 공판은 일상화되고 내면화된 무기력과 회의주의를 깨트리는데 매우 강렬한 자극제가 되어 주었다. 미국의 존경받는 엘리트 체육인인 래리 나사르는 지난 20년간 어린 체조선수들을 성추행, 폭행한 혐의로 고소되었다. 범죄를 부인하며 버티던 그가 자신의 죄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156명에 달하는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법정 증언 때문이었다. 피해 여성들은 나사르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그의 범죄 행위를 증언했고, 그녀들의 일주일 간에 걸친 용감한 증언 앞에 나사르는 결국 무릎을 꿇었다. 자신의 세 딸이 모두 나사르에게 성추행 피해를 당한 한 아버지가, 딸들의 증언을 듣던 중 나사르에게 달려드는 모습은 그의 행위가 피해자와 그 가족에게 얼마나 끔찍한 고통을 주었는지 짐작하게 한다. 나사르에게 175년형을 선고한 로즈마리 아킬리라 판사의 선고 전 발언은 그래서 더 감동적이다. "피해자 여러분, 당신들은 더이상 피해자가 아닙니다. 당신들은 생존자입니다."

장자연 리스트의 진실이 여전히 감춰져 있는 상황에서, 최근 서지현 검사의 검찰 내 성폭력에 대한 내부 고발이 대한민국을 흔들고 있다. 우리 사회보다 젠더 감수성이 높다는 미국에서도 피해자들의 고백은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데, 하물며 강력한 위계질서와 유교적 가부장제 문화가 팽배한 우리 사회에서 피해자들의 고백은 더욱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우리 모두 눈을 크게 뜨고 서지현 검사 사건을 지켜보아야 하는 이유다. 그녀들이 더 이상 피해자가 아닌 당당한 생존자들이 될 수 있도록. 더 이상 우리의 딸들에게 장자연이나 서지현의 길을 가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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