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칼럼- 살어리 살어리랏다, 지방분권 공화국

@강동준 입력 2018.03.08. 00:00

강동준 마케팅사업본부장

벌써 10여년 전의 일이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홍어 얘기에 묻어난 씁쓸함 때문에 그날의 기억이 아직도 선하다.

"촌에서 뭐라도 대접하고 싶은데, 가져갈 것이 없었죠. 그래서 고민 고민하다 별미라고 생각해 큼지막한 흑산도 홍어를 닦달해서 가져갔습니다. 처음엔 꺼려하는데 신선한 횟감처럼 입에 찰싹 달라붙어 좋아들 합니다. 저녁은 자연스럽게 화기애애한 자리로 변하죠."

전남도청 한 공직자가 정부 부처를 오가면서 전한 예산확보 뒷 이야기다. 암모니아 가스 싫어하는 서울사람들 취향을 저격한 나름의 전략에 당시엔 고개가 끄덕여졌다.

지방의 서러움 언제까지

지금은 있을 수 없는 일이겠지만, 당시에는 흔히 전해들을 수 있는 얘기였다.

지방자치단체의 서러움이 어디 한두 가지 뿐인가. 전체 조세중 지방세의 비중이 20% 남짓으로, 지방자치 20년이 넘도록 여전히 2할 자치에 머물고 있다. 지방정부엔 조세결정권이 없다. 국회에서 세목을 신설하고 세율을 결정한다.

자체 재원으로 공무원 인건비조차 해결 못하는 지자체가 태반인 지방정부의 재정난은 중앙정부가 돈줄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국세와 지방세의 비율은 8대2인데, 재정사용 비율은 4대6으로 집계된다.

재정수입은 중앙정부에 비해 6이 적은 반면 돈을 써야 하는 비율은 오히려 2가 많은 구조다. 그러니 예나 지금이나 '예산확보 잘하는 단체장이 최고'라는 인식은 변함이 없다. 표를 바란다면 선거전략으로도 손색이 없다. 문재인 정부가 지방분권 개헌을 통해 고치려는 4대 지방자치권중 자치재정권이다.

불합리한 세입구조와 돈의 중앙집중은 그렇다 치고, 지자체 정원 문제는 어떤가. 공무원 정원 한명 늘리는데 수개월이 소요되고, 그 절차와 과정도 복잡 다단하다. 인구수와 공무원수, 면적, 사업체수 등 10개 항목에 달하는 전전년도 행정지표를 기준으로 매년 연말에 평가를 해서 연초에 결정한다. 다시 지자체가 이를 반영하기 위해서는 조직개편을 통해 조례나 규칙을 새롭게 다듬어야 한다. 지방정부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4대 자치권중 자치입법권이다.

중앙정부의 지방으로의 사무이양도 마찬가지다. 중앙의 허락을 받아야 하고 눈치보기에 급급하다. 지방에선 '뒤치다꺼리나 하란 말이냐'는 볼멘소리도 들린다. 사실상 지방재정과 조직의 실질적인 권한은 여전히 중앙정부의 통제 아래 놓여있다고 봐야 한다. 오히려 지방자치의 역행이다. 4대 자치권중 자치행정권이다.

다음은 4대 자치권중 자치복지권. 저출산과 고령화의 신음소리는 지방으로 갈수록 더 높다. 10년간 80조원을 투입했다고 하는데 지방은 오히려 피폐해지고 있다. 인구 소멸에 따른 성장동력의 상실이다. 방치된 지방을 이대로 두면 국가 경쟁력은 요원할 것이다.

그런데도 수도권 인구 집중 현상은 심각한 수준이다. 정부도 해법을 찾는 데 실패했고, 오히려 정치권에서는 인구 집중 덕분에 '수도권의 표심만 잡아도 전체의 반을 먹고 간다'는 우스갯소리가 나돈다.

인구수를 따져보자. 서울이 2018년 1월 현재 985만여 명, 경기도가 1천280만 명, 인천이 295만 명이다. 대한민국 전체 인구의 절반인 2천500만 명이 넘는다. '걸어다니는 입법기관'인 국회의원 의석수를 보면 지역구 전체 253석의 절반에 육박한다. 서울(47) 경기(60) 인천(13)의 의석수가 120석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정당의 선거 전략이 바로 나온다.

철저한 현장위주의 교훈

수백년동안 습관처럼 굳어진 중앙집권식 사고와 정치 틀에서 벗어날 때가 왔다. '연방제에 버금가는 강력한 지방분권제'는 무엇을 말하는가. 현재 미국, 독일, 프랑스 등의 선진국에서는 중앙정부가 큰 틀의 정책 결정 및 통치에만 관심을 갖고 실질적 도시운영 권한은 지방도시들이 갖는 형태의 지방분권을 시행하고 있다.

그래서 떠오르는 오바마 전 대통령의 사진 한 장. 지난 2011년 5월 1일, 백악관 상황실에서 자신의 상석을 군합참의장에게 내주고 대통령과 부통령 등이 국가안보팀의 멤버들과 함께 모여 작전회의를 하는 모습이다. 노트북과 사진자료들이 테이블에 놓여있고 오바마 대통령은 군합참의장 옆에 쭈그리고 앉아 대책회의를 지켜보고 있다.

'보충성의 원칙'이다. 주민복리에 관한사항은 주민과 가장 가까운 기초자치단체에서 우선적으로 처리하도록 보장한다는 것이다. 지방자치는 철저히 현장 위주로 가야 한다는 교훈이다.

위기상황의 대처도 마찬가지다. 세월호 때 놓쳤던 골든타임이 떠오른다. 미용사를 호출해 머리를 손질하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찾아 첫 질문을 던진다. "다 구명조끼를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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