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이질적인 것을 결합시켜
우리가 일상에서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을 재현하였다. 달리의
기상천외한 발상은 억압된 욕망의
무의식적 발현과 금기시 되는
소망을 표출하기 위한 시도에서
지난해 7월 스페인 피게레스의 한 극장 지하실에 묻혀있던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1904~1989)의 관이 열려 세계적인 시선을 집중시켰다. 향년 84세 일기로 영면하였던 달리는 생전 슬하에 자녀가 없었다. 그러나 그의 사후 28년이 지나 제기된 친자확인소송 때문에 스페인 법원은 불가피하게 달리의 시신에서 DNA 시료를 채취하라고 명령하였다. 두 달 뒤 달리재단은 DNA 분석 결과 생물학적 자녀가 아님이 증명되었다고 성명을 발표함으로써 터무니없는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달리 사후에 벌어진 친자확인 검사는 달리의 자서전에 기술된 기발하고 상상력 넘치는 삶에 비추어 본다면 단순한 해프닝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달리는 "나는 초현실주의 자체이다"라고 언급한 정도로 그림 뿐 아니라 삶 자체를 초현실적으로 살다간 화가이기 때문이다.
스페인 카탈루냐 동북부의 소도시 피게레스에서 출생한 달리는 태어나자마자 부모에 의해 죽은 형의 이름인 살바도르로 불리었다. 달리는 어린 시절 자신이 삶을 인식하기도 전에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혼돈을 겪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달리에게 다가온 삶과 죽음의 이중적 의미는 무의식과 상상의 세계를 넘나들며 그 간격을 좁혀 나갔다. 달리는 환영(幻影)을 불러일으키는 일루셔니스트(illusionist)처럼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예술세계로 우리를 끌어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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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예술과 환영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그의 시신이 안장되어 있는 살바도르 달리 극장 박물관(Teatre-Museu Gala Salvador Dali)을 방문하였다. 성처럼 쌓아올린 붉은 외관과 거대한 사이프러스 나무에 둘러싸인 박물관은 피게레스 지역을 방문하는 여행객의 시선을 머물게 하는 명소로 알려져 있다. 벽면에는 카탈루냐 전통 빵 모양이 금빛 인장처럼 붙어 있고 그 벽면과 연결된 지붕위에는 달걀 모양의 조형물이 솟아있다. 1974년 개관한 박물관은 오랫동안 스페인 내전으로 방치되어 있던 극장의 외관과 내부, 공간전체를 메우는 작품에 이르기까지 모두 달리의 손길로 새롭게 단장된 것이다.
달리의 박물관은 친밀한 대상에게서 느껴지는 낯설고 두려운 감정 즉 언캐니(uncanny)를 느끼게 한다. 일반적으로 초현실주의는 두 이미지를 병합시켜 시각적인 효과를 극대화한다. 여기서 두 이미지가 서로 다를수록 그 특징은 더욱 두드러진다. 초현실주의 회화를 두고 로트레아몽의 시집 <말도로르의 노래>(1969)에서 "재봉틀과 우산이 해부대 위에서 우연히 만나는 것과 같은 아름다움"을 지칭하는 것처럼 달리의 박물관은 기존에 알려진 형태의 사고 밖에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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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박물관을 설계할 때 단순히 작품만 전시하는데 그치지 않고 관객들과 작품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극장의 홀(Hall), 기다란 복도, 층을 잇는 계단, 천장 등을 적극 활용하였다. 특히 회화를 주축으로 조각, 판화, 영화, 연극, 사진, 패션, 보석 디자인 등 다양한 오브제를 활용한 설치 미술을 접목시켜 작품해석에 있어서도 다양한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미술관 입구에 들어서면 원형 마당 한가운데에 <비 내리는 택시(The Rainy Taxi)>가 있다. 자동차 보닛 위에는 목에 쇠사슬을 찬 풍만한 몸매의 아프리카 여인상이 위풍당당하게 서서 관람객을 맞이한다.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보면 작은 우산을 쓰고 있는 배가 뒤집어진 채 공중에 떠있다. 여기에 관람자가 동전을 넣으면 바깥 외부가 아닌 캐딜락 차량 내부에 비가 쏟아진다. 달리는 이질적인 것을 결합시켜 우리가 일상에서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을 재현하였다. 달리의 기상천외한 발상은 억압된 욕망의 무의식적 발현과 금기시 되는 소망을 표출하기 위한 시도에서 비롯되었다.
한쪽으로 치우쳐 있는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건물의 가장 넓은 공간인 무대가 펼쳐진다. 무대 위의 천장은 투명 유리로 만든 웅장한 돔을 통해 외부의 밝은 햇빛이 내부의 공간과 맞닿아 있다. 무대 정면으로는 〈죽음의 새〉를 주제로 한 거대한 그림이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관람객의 모든 시선은 무대 좌측 2층 테라스 안쪽에 위치한 <달리 시각의 링컨(Lincoin in dalivision)>(1977)을 바라보고 있다. 르네상스의 스푸마토 기법에서 영감을 받은 이 작품은 링컨의 초상화를 그린 것이지만 먼발치에서 응시하면 숨은 그림에 감춰진 수수께끼와 같은 형상이 드러난다. 바로 해변을 바라보는 여인의 뒷모습 즉 갈라의 누드가 뚜렷하게 윤곽선을 드러낸다. 달리의 기발한 아이디어가 빛을 발하는 순간에 만나게 되는 갈라와의 조우는 깊은 인상을 남긴다.
2층으로 올라서면 줄을 서야 볼 수 있는 <아파트로 쓰일 수 있는 메이 웨스트의 얼굴(Face of Mae West Which May Be Used as an Apartment)>(1974)이 있다. 달리는 1920~30년대 할리우드의 섹스 심벌이었던 유명 여배우 메이 웨스트의 얼굴을 엉뚱한 상상력으로 형상화하였다. 방안에 배치된 작품들을 살펴보면 하얀 벽에 두 점의 흑백 그림이 금빛 액자 안에 걸려 있고, 그 가운데 사람의 코를 응용해 만든 특이한 벽난로와 빨간 입술 모양의 소파가 놓여 있다. 단상 중앙에서 보면 액자는 눈이 되고 가운데 벽난로는 코, 소파는 입술로 조화를 이룬 메이 웨스트의 얼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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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은 갈라를 모티브로 한 다수의 작품 외에도 달리의 모습을 담은 사진, 스케치, 드로잉들도 즐비하다. 그 중에서 자신의 초상을 그린 <구운 베이컨을 곁들인 부드러운 자화상>(1941)은 미술사를 통틀어 가장 독창적인 화가의 자화상으로 알려져 있다. 달리의 얼굴은 나무 지팡이에 기댄 채 부드럽게 녹아내리고, 그 아래에는 구운 베이컨 조각이 놓여 있다. 달리가 직접 SOFT SELF PORTRAIT라고 표기한 이 자화상은 그의 초현실주의적인 세계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때문에 먼발치에서도 수염달린 달리의 얼굴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이 밖에도 루브르에 있는 니케 여신상부터 앙리 마티스의 '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피카소, 아르침볼도 등에 이르기까지 달리의 시각으로 재해석된 작품들을 발견할 수 있다. 박물관은 전시실 뿐 아니라 기다랗게 이어진 복도와 계단을 거쳐 건물의 4층에 이르기까지 온통 괴짜 천재의 기발한 상상력으로 가득 차 있다. 달리 박물관은 무의식과 상상력이 불러낸 환영이자 동시에 현실 공간에 창조해낸 예술 작품이다. 어쩌면 우리의 꿈도 상상하는 대로 구현되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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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허경은
전남대학교에서 미술이론을 전공한 미술학 박사다.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HK), 전남대학교 의학박물관, 한국미용박물관 학예실장과 아시아문화개발원 문화정보원 사업팀 조감독(책임연구원)을 거쳐 2016 국제여성미술제 큐레이터 등 역임했다.현재 사단법인 광주미협평론분과이사, 프랑스문화학회 편집위원, 유럽문화예술학회 활동 중이며 전남대학교에서 강의, 연구를 기반으로 미술평론, 다수의 논문, 저술활동에 힘쓰고 있다.
- 도서관서 인문학과 친해져요 광주 서구공공도서관이 지역민들의 인문소양 함양과 인문학의 대중화를 위해 '인문 라이프러리(life+library)-일상 속 인문학 울림'을 25일 시작한다.'인문 라이프러리'는 문학(文)-역사(史)-철학(哲) 각 분야를 아우르는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 올해는 '일상 속 인문학 울림'을 슬로건으로 누구나 친근하게 접할 수 있는 음악과 인문학을 접목한 강연을 마련했다.문학 분야 인문학 프로그램은 '음악과 문학을 품은 낭만 인문학'을 주제로 오는 25일부터 5월 23일까지 3차례에 걸쳐 운영된다. ▲25일 셰익스피어로부터 탄생한 음악들 ▲5월 9일 시인과 함께 태어난 음악들 ▲5월 23일 문학을 바탕으로 한 오페라 명작들 등으로 꾸려졌으며 와이엔듀 대표 윤성희 강사가 프로그램을 도맡아 진행한다.이어 6~7월 역사, 9~10월 철학 분야가 진행된다.참여는 지역민 누구나 가능하며 신청 등 자세한 사항은 서구공공도서관(062-654-4306)으로 문의하면 된다.김혜진기자 hj@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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