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의 시각- 맞벌이부부에게는 태풍도 초재난급으로 온다

@이윤주 입력 2018.08.24. 00:00

이윤주 사회부 차장

태풍 '솔릭'이 한반도에 들어섰다. 올해는 유례없는 폭염에 태풍이 여러차례 한반도를 이리저리 비껴간 터라 이번 태풍에 우려가 컸다.

한반도에 상륙하는 시기부터 경로까지 며칠전부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터였다. 그래서일까. 요란했던 초기에 비해 예상보다 더디게 접근하는 '솔릭'에 다소 무뎌져가고 있었을 때였다.

드디어 22일 제주에 '솔릭'이 상륙했다는 소식과 함께 그날 오후부터 문자가 이어졌다.

큰 아이 학교에서 방학기간 운영하는 '방과후 활동' 휴강, '돌봄교실' 임시휴업을 알리는 공지문자가 학교, 방과후 담당 교사, 담임교사로부터 반복적으로 날아왔다.

당장 다음날 큰 아이를 어떻게 해야하나 대책없이 걱정만 커져갔다.

그 와중에도 밤늦게까지 뉴스를 검색하는 '직업병' 때문에 잠들기 직전까지 이런저런 뉴스들을 보다 잠이 들었다.

그리고 23일 날이 밝자 오전부터 다시 문자공세가 시작됐다. 역시 큰아이 학교였다.

이번에는 '방과후 활동'휴강, '돌봄교실'임시휴업 기간이 하루 더 연장됐다는 안타까운(?) 소식이었다.

큰 아이 문제로 고민을 하며 둘째 아이 어린이집에 도착한 순간, 태풍 '솔릭' 보다 더한 '초재난'이 터졌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당장 이 날 오후 3시까지 하원을 시켜야한다는 통보를 받은 것이다.

오전에 갑작스레 관할 구청에서 지시가 왔다며 어렵사리 얘기를 꺼내는 선생님 앞에서 황당한 표정을 짓지 않으려 무던히도 애를 써야만 했다.

큰 아이를 친구네에 급하게 맡기고 출근은 했지만 둘째 아이를 어떻게 해야하나 이리저리 전화를 돌리다 갑자기 분노가 치밀었다. 그저 아이를 자신들이 관리하는 공간에만 두지 않으면 책임을 다하는 건가 싶은 마음에서다.

예방이 최선이겠지만 학교, 유치원, 어린이집에 오는 것을 막고, 어서 빨리 그곳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만이 능사인가 싶어서다.

갑작스런 휴교나 휴원에 임해야 할 맞벌이 부부들의 상황을 조금이나마 인식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이 날 큰아이 학부모 단톡에서 몇몇은 아이들을 데리고 출근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나마 상황이 가능한 몇 안되는 직장들이다. 그마저도 어려운 부모들은 어떻게 했을까. 내 일처럼 걱정이 앞섰다.

결국 이 날 둘째 아이는 남편이 맡았다. 회사가 다행히 둘째 아이 어린이집과 가까워 잠시 짬을 내보겠다고 했다. 남편도 어린이집이 하원시간으로 정한 오후 3시를 조금 넘겨 어린이집에 도착했다고 한다. 그리고 둘째 아이를 태우고 회사로 가고 있다는 전화를 받고서야 안심이 됐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래야 할까.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상황이 나아질까.

태풍 '솔릭'이 가고 또다른 태풍이 오면 그때는 또 어떤 '재난'이 맞벌이부부들 앞에 벌어질까.

여전히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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