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강진에서 한강까지 다산과 함께 길을 걷다' 1일 참가를 마치고

@무등일보 무등일보 입력 2018.10.17. 00:00

김홍식 광주서부교육지원청 교육장

가족과 격리된 채 한 인간에게 주어진 18년의 유배 생활은 가히 그 처지를 상상하기 어렵다. 그저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질 뿐이다. '유배가 끝내 풀리지 않아 살아서 돌아가지 못하는 것도 운명'이라 여기며 결코 현실과 타협하지 않았던 다산! 드디어 강진 18년의 유배에서 풀려나 꿈에도 그리던 고향을 향해 먼 길을 떠나는 다산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또한 큰 스승과 헤어지는 아쉬움을 애써 숨긴 채 밝은 웃음으로 선생을 떠나보내야만 했던 제자들과 동고동락했던 마을 사람들의 마음은 오죽했을까.

걸어야 할 남양주 고향 땅까지는 족히 400㎞가 넘는다. 200년 전 꼭 이맘 때, 선생이 걸었던 그 해배길을 10여 명의 도보단이 12일에 걸쳐 다시 다산 선생과 함께 걷는다. 우리 고장 빛고을 광주를 지나가는 다산 선생 일행을 앉아서 그냥 보낼 수만은 없지 않겠는가. 업무를 잠시 뒤로 미루고 1일 참가자로 나주역에서 합류했다. 강진을 떠난 지 3일 차 되는 일정. 나주를 출발, 평동 저수지 입구에서 시작되는 산들길 제5구간을 따라 복룡산, 송산유원지를 만나며 황룡강 물길을 위안 삼아 임곡에 이르는 30여㎞ 남짓 구간이다. 더할 나위 없이 눈부신 가을 햇살과 파란 하늘, 곡식 냄새 그윽한 황금 들녘, 그리고 길섶에 피어있는 들국화, 석별의 손을 흔드는 듯한 억새의 하얀 물결은 말없이 건네는 환영과 격려의 인사로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떠나는 입장에서 보면 비록 강요받은 유배지이기는 했어도 전라도 남쪽 땅에 대한 선생의 감회는 남달랐을 것이다. 만나는 사람 한 명 한 명, 황토 빛깔 흙 내음, 산천의 작은 풀꽃 하나까지도 영원히 가슴 속에 담아가고 싶었을 것이다. 평동 들길에서 멀리 더욱 겸손해진 무등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에 젖고, 어떤 당부의 말을 남기고 싶었을까? 길에서 오가는 사람들과 가을걷이를 하는 농부들과는 무슨 말을 주고받았을까? 근·현대사를 거치면서 우리 고장 사람들이 불의에 맞서 스스로 떨쳐 일어났던 저항의 역사를 생각해 보면 참으로 정의롭고 올곧은 정신의 씨앗을 내딛는 걸음걸음마다 뿌리며 가지 않았을까? 그 답을 찾고 실천하는 것은 온전히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몫이리라.

용진산 그림자가 강에서 출렁일 때 삼화교 갈림길에서 정중하게 다산을 배웅하고 다시 생각한다. 과연 선생이 꿈꾸던 세상은 지금 얼마나 실현되고 있을까? 선생이 오늘의 우리 현실과 만난다면 어떤 회초리를 들고 싶을까? 막중한 책임감을 부여받은 나라의 지도자와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국민적 분노와 지탄을 받으며 유배 아닌 유배 생활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무슨 말을 건넸을까.

2018년은 목민심서 저술 및 다산 해배 2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다산의 위대한 가르침은 더욱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이번 해배길 걷기는 그 나름의 의미를 넘어 우리 사회에 던지는 하나의 커다란 외침이다. 철저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다산과 함께 하는 동행이고 순례이다. 다산의 고결한 정신과 가르침이 해배길 따라 모든 사람들의 가슴 속에 강물처럼 넘쳐나길 간절히 기대해 본다.

참가자들은 다산의 정신을 생각하고 다산을 나누면서 고통스럽게 무거워지는 발길을 경쾌한 꽃길로 치환하며 발길을 재촉한다.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하고 배려하면서 도보단이 무사히 한강에 도착할 때까지 마음으로라도 남은 일정을 함께 걸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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