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라도 사람이다
정남구 지음/라의눈/2만원
1018년(고려 현종 9년) 고려시대, 강남도와 해양도를 합쳐 전라도가 만들어졌다. 2018년은 전라도가 그 이름을 얻은 지, 꼭 1천년이 되는 해다. 이에 맞춰 전라도 천년의 역사를 다룬 책이 나왔다.
정남구의 '나는 전라도 사람이다'가 바로 그것이다.
이 책은 단순한 역사서가 아니라 전라도의 정체성에 초점을 맞춘 책이다. 저자는 전라도에 대한 차별과 오해, 편견이 어디에 바탕을 두고 있는지 치열하게 탐구한다. 땅, 선비, 신선, 밥 등 8개의 핵심 주제들을 일말의 과장과 미화를 배제한 채, 현장 취재하듯 논픽션 형식으로 서술한다.
역사를 통틀어 끝없이 수탈 대상이었던 지역, 국가적 환란 앞에서 목숨 던져 저항해온 땅, 새로운 사상과 종교가 싹 튼 전라도에 대한 깊은 통찰에 이르게 한다.
전라도에서 태어나 자란 저자는 전라도에 대한 세간의 오해와 편견, 전라도 사람들이 오랜 세월 받아온 차별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
전라도는 평야가 넓고, '큰 산들은 저 멀리 떨어져 벌을 서듯 쪼그려 앉아 있는 곳'이다.
삼한시대 벽골제를 비롯한 '3호'가 만들어져 우리나라에서 대규모 수리시설이 가장 발달했던 곳이고, 농지 간척이 활발해 조선시대에 이르면 나라의 곡창이 됐다.
그렇기에 힘 있는 이들이 빼앗아갈 것이 많았다. 실제로 조선 후기에는 중앙정부 조세의 40%를 담당한 곳이 전라도였다. 1862년 임술민란에서 농민봉기가 가장 많이 일어난 곳이 전라도요, 1894년 갑오농민전쟁이 일어난 곳도 전라도란 것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일제 강점기에도 전라도엔 대지주가 많았다. 특히 일본인들은 전라북도의 논밭과 묵은땅을 대거 사들였고, 많을 때는 전북 쌀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일본으로 실어갔다.
그랬다. 전라도에 대한 그 모든 편견과 전라도 사람들에 대한 차별은 전라도의 풍요를 탐내 빼앗아간 사람들이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허구에 기반하고 있었다. 빼앗아가는 이들은 전라도에 '악'의 굴레를 덧씌워야 했다. 그래야 양심을 달래고 편히 잠잘 수 있기 때문이었을 터이다.
그렇다고 전라도가 단순히 수탈만 당한 것은 아니다. '문제에 먼저 직면하였기에 앞서 해결책을 모색하고, 제 몸을 부셔 벽을 깨뜨리려 애쓴 이들이 전라도 사람들'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임진왜란 때는 나라를 끝까지 지켜낸 땅이고, 구한말엔 가장 끝까지 일본의 국권 침탈에 저항한 땅이고, 동학과 증산 사상 등 새로운 사상과 종교가 꽃핀 땅이다.
저자는 사료를 뒤지고, 비판적 검증을 거쳐 다큐멘터리를 쓰듯 전라도 천년의 이야기를 써내려가고 있다.
불완전한 사료를 근거로 무리하게 주장을 펼치기보다는 필요한 경우 저자가 짐작하는 바를 근거를 들어 서술하고 있다. 단편적인 사료에 상상을 덧붙여 사료의 빈틈을 메우기보다는 차라리 공백으로 남겨두는 편이 더 낫다는 결벽증에 가까운 당당함이다. 들끓는 애향심이나 편견에 대한 한풀이로 이 책을 대한다면 뭔가 미진함을 느낄 것이요, 역사 안에 숨겨진 진실을 통시적이고 거시적으로 통찰코자 한다면 더없는 만족감을 얻을 것이다.
특히 저자는호남, 영남이란 지명의 유래, 임진왜란 때 승의군의 활약, 구미호와 삼신산 전설, 벽골제와 눌제의 역사, 전라도 간척의 역사와 윤선도와 갑오농민전쟁의 뒷이야기, 역사에서 지워진 보천교 등 이 책에는 흥미진진한 읽을거리가 풍부하게 제공하고 있다. 본문 뿐만 아니라 각 장의 뒤에 첨부된 주석에서도 미처 몰랐던 새로운 지식들을 알려주고 있다.
저자는 "전라도에 대한 세간의 오해와 편견, 전라도 사람들이 오랜 세월 받아온 차별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며 "전라도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유구한 역사를 지닌 전라도의 의미를 깨닫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옥경기자 uglykid7@hanmail.net
- 대장간에 남아 있는 우리의 모습 "누군가 기록해두지 않으면 영영 사라질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그것이 쌓여 이야기가 되고, 역사가 된다. 이 책의 귀함과 무게가 거기에 있다."한때 서울 을지로 7가는 대표 대장간 거리였다. 녹번동,수색, 구파발 등지에도 대장간이 많았다. 그랬던 대장간들이 1970∼80년대 급격한 산업구조 개편과 도시개발을 거치면서 사양길로 접어들었다.이제는 대장간이 모여 있는 곳을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대장간 셋이 붙어 있는 인천 도원동이 국내에 마지막 남은 대장간 거리라 할 수 있다.도원역 부근에 있는 인일철공소, 인천철공소, 인해대장간 중 맏형 격은 1938년생 최고령 대장장이 송종화 장인이 운영하는 인일철공소다.책 '대장간 이야기'는 사라져가는 우리 시대의 마지막 장인 대장장이와 대장간의 모든 것을 담았다.저자는 대장간 현장과 거기서 일하는 대장장이들, 대장간에서 만들어낸 연장들을 사용하는 우리 삶의 현장을 누빈다.역사 속 대장장이들이 어떻게 그려졌는지, 대장간이나 대장장이는 우리 문화에서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는지도 살핀다.저자는 또 대장간이 우리말의 아주 오랜 곳간임에 틀림 없다고 말한다.이 책에는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때 참전한 명나라군에 건넨 선물 중 휴대용 불붙이는 도구 부시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당시 이순신 장군이 부시를 일컬어 적었던 화금(火金)은 불을 일으키는 쇠라는 말이다. 부싯돌을 쳐서 불을 일으키는 쇳조각이 부시인데, 그 어원을 따져보면 불과 쇠가 합쳐져 이뤄진 말이다.이 책은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온 우리 대장간과 대장장이의 세계를 현장에서 관찰하고 정리한 결과물이다. 대장간과 관련한 거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대장간의 인문학적 향기를 다양한 관점에서 드러내고자 애썼다"고 말하는 저자는 대장간 현장과 거기서 일하는 대장장이들, 나아가 대장간에서 만들어낸 연장들을 사용하는 우리 삶의 현장 속을 누빈다. 또한 역사 속에서 대장장이들이 어떻게 그려졌는지, 대장간이나 대장장이는 우리 문화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는지도 살핀다. 이 책은 우리나라 대장간 다섯 곳, 일본의 다네가시마 대장간 한 곳의 현장 모습을 보여준다. 인천의 도심 한복판에 있는 네 곳 등인데, 이제는 모두 70대 이상의 노인 혼자서 일한다. 젊은 누구도 대장간 일을 배우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노인 대장장이들이 일을 그만두면 그 대장간들은 영영 사라지고 말 것"이라고 저자는 아쉬워한다.뭐니 뭐니 해도 가장 고마운 건 이때껏 대장간 현장을 지켜내온 이 땅의 나이 드신 대장장이 장인들이다. 힘에 부칠 때마다 대장간 현장을 찾아 그분들의 망치질 소리를 들으며 힘을 얻고는 했다.대장장이와 도구, 그리고 쇠. 대장간의 3요소라고 할 수 있다. 대장장이가 있어야 쇠를 달구고 두들겨서 뭔가를 만들 수 있다. 원자재인 철물이 없어도 대장간은 돌아가지 않는다. 기술을 가진 대장장이나 원재료인 쇠 말고도 화로, 모루, 망치, 집게 같은 필수 도구가 있어야 한다. 대장간 일은 쇠를 불에 달구는 작업이 우선이다. 화로에는 풀무가 따라붙는다. 바람이 없으면 화로에 불길을 일으킬 수 없기 때문이다.대장간 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성냥이다. 충청도 등 일부 지역에서는 대장간을 승냥깐이라 한다. 이 승냥이라는 말이 성냥에서 나왔다.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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