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상)전두환, 시민 학살한 도청 재진압 작전 결정했다

@무등일보 무등일보 입력 2018.11.23. 00:00

80년 5월 광주민주화 운동 당시 옛 전남도청 재진압 작전(27일·상무충정 작전)은 광주시민을 무참히 학살한 결정판이었다. 이 작전을 당시 보안사령관이던 전두환씨가 두차례에 걸쳐 점검하고 최종 결정했다는 기록이 나왔다. 작전 전날인 26일 정호용 특전사령관과 소준열 전투병과교육사령관 겸 전남북계엄분소장을 보안사령부로 불러 이를 논의하고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5·18 기록관은 '12·12, 5·18 실록(1997년 5월 대한민국재향군인회 발간·이하 실록)', '제5공화국 전사', 검찰 수사·재판 기록 등을 토대로 전씨와 보안사의 5·18 관련 행적을 분석해 22일 이같은 내용을 공개했다. 기록관이 실록 등에 바탕해 밝힌 바에 따르면 전씨는 25일 오후 12시15분께부터 2시간 가량 국방부 육군회관에서 주영복 국방장관, 이희성 계엄사령관, 황영시 육군참모차장 등과 상무충정작전 지침을 검토한 뒤 27일 새벽 도청을 재진압키로 했다.

26일 오전 전씨는 보안사에서 재진압 작전과 관련한 두 번째 회의를 가졌다. 정 특전사령관, 노태우, 백운택 9사단장 등 하나회 회원들(이상 육사 11기)과 소준열 전교사령관(육사 10기) 등이 함께한 자리였다.

전씨는 이날 두 번째로 가진 회의에서 정호용 특전사령관으로부터 작전 계획을 보고받고 작전에 필요한 가발(침투시 변장용)을 지원했다. 기록관측은 관련 자료들을 분석한 결과 전씨가 광주에 있던 정호용·소준열을 헬기로 호출, 회의에 참석케 했다고 밝혔다.

정호용은 전과의 회의 뒤 오후 2시께 이희성 계엄사령관에게 충격용 수류탄과 항공사진을 받아 오후 9시께 광주 송정리 비행장에 도착했다. 그리고 이후 20사단장, 3·7·11공수여단장을 소집해 장비를 분배하고 '침투 시작 시간'을 27일 오전 4시로 밝힌 뒤 각 여단의 임무를 재확인했다. 소 전교사령관은 정 특전사령관보다 5시간 먼저(26일 오후 4시) 광주비행장을 찾아 공수여단 장병들을 격려하고, '27일 새벽 0시1분부터 작전을 개시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전씨는 정권 찬탈을 위해 시국 수습 방안을 기획·설계해 공작을 펼치고 무력진압을 정권 찬탈의 수단으로 썼다. 그러고도 자신은 이에 관여한 바가 없다는 뻔뻔한 변명을 해왔다. 이들 실록의 기록들과 달리 전두환 지시로 발간된 5공화국 전사에는 전두환이 시국 수습 방안, 재진압작전 결정 모임에 두차례 참석했던 것을 누락시킨 사실이 드러났다. 출범을 앞둔 5·18진상조사위가 명명백백하게 진상을 밝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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