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외로 읽는 한국 현대사(정문헌 지음/ 인문서원/ 2만원)
역사는 사건의 집합이다.
이렇듯 역사는 시간 속에서 사건을 통해 인간의 삶을 규정한다.
언론인 정운현씨의 '호외로 읽는 한국 현대사'는 실시간으로 뉴스를 접할 수 없었던 과거에 발행된 '호외'를 통해 현대사의 단면을 살펴볼 수 있도록 쓰여졌다.
호외는 우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대사건들을 가장 먼저 기록한 것으로 호외의 역사는 지난 역사 속 대사건들의 색인의 또 다른 이름이다. 저자는 150년의 한국 근현대사와 함께 한 호외를 통해 우리 역사의 격동의 순간들을 끄집어냈다.
그는 앞서 수집한 호외를 토대로 지난 1997년 '호외, 백 년의 기억들'을 펴낸 바 있다.
그는 이후 20여 년의 세월 동안 새로 발행된 호외들을 추가, 이번 저술을 출간했다.
이 땅에서 발행된 최초 호외는 지난 1894년 당시 인천에서 발행된 일본계 신문 '조선신보'가 청일전쟁이 임박해 발행한 것이다.
한글로 호외가 발행된 것은 이보다 3년 뒤의 일이다.
1897년 미국인 선교사 언더우드가 창간한 '그리스도신문'은 그해 8월 22일 고종황제의 탄신일을 맞아 그의 사진을 석판으로 인쇄해 호외로 배포했다. 이 호외는 속보성 호외라기보다는 부록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한국 신문계의 첫 호외는 1898년 2월 19일 '독립신문'이 발행한 호외다.
그 근거는 이 신문이 한국인에 의해 발행됐고 취급한 기사가 전형적인 속보성 기사라는 점 때문이다. 이날 이 신문은 미국 군함 메인호가 하바나항에서 폭침된 사실을 속보로 전달하기 위해 호외를 발행했다.
일제시대를 거쳐 해방 직후 창간된 좌익 신문들의 호외 발행이 두드러졌다.
한국 신문계에서 호외가 제2의 전성기를 누리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들어서면서부터다. 너무 많은 호외가 발행되자 한국신문협회가 자율적으로 호외 발행 자제를 권고할 정도였다.
지난 1970년대에는 올림픽 호외도 등장했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호외는 급격히 줄어들었고 2천년대 들어 호외는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속보 매체로서의 기능은 거의 상실한 상태다.
호외는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자 생생한 역사의 기록이다. 호외는 강화도 조약, 을사늑약 등을 통해 일제 치욕의 역사를 보여주기도 하고 민족의 자긍심을 높인 안중근·나석주·윤봉길 의사의 의거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4·19 혁명, 6·29 선언 등 민주 사회를 위한 시민들의 열망과 함께 하고 성수대교·삼풍백화점 붕괴, 서해페리호 침몰 등 국민을 눈물짓게 한 호외도 있었다. 호외는 이처럼 새로운 역사를 얼여가는 발걸음 하나하나를 전하는 매체로서 충실한 역할을 해오고 있다.
정운현씨는 경남 함양에서 태어나 경북대와 고려대 언론대학원에서 수학했다. 그는 84년 중앙일보 입사를 시작으로 언론계에 입문, 서울신문 차장, 오마이뉴스 편집국장 등을 지내며 20여 년간 기자로 활동했고 현재 국무총리 비서실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동안 '실록 군인 박정희' '임종국 평전' '친일파는 살아있다' 등 다수 저서를 냈다. 최민석기자 backdoor20@nate.com
- 대장간에 남아 있는 우리의 모습 "누군가 기록해두지 않으면 영영 사라질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그것이 쌓여 이야기가 되고, 역사가 된다. 이 책의 귀함과 무게가 거기에 있다."한때 서울 을지로 7가는 대표 대장간 거리였다. 녹번동,수색, 구파발 등지에도 대장간이 많았다. 그랬던 대장간들이 1970∼80년대 급격한 산업구조 개편과 도시개발을 거치면서 사양길로 접어들었다.이제는 대장간이 모여 있는 곳을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대장간 셋이 붙어 있는 인천 도원동이 국내에 마지막 남은 대장간 거리라 할 수 있다.도원역 부근에 있는 인일철공소, 인천철공소, 인해대장간 중 맏형 격은 1938년생 최고령 대장장이 송종화 장인이 운영하는 인일철공소다.책 '대장간 이야기'는 사라져가는 우리 시대의 마지막 장인 대장장이와 대장간의 모든 것을 담았다.저자는 대장간 현장과 거기서 일하는 대장장이들, 대장간에서 만들어낸 연장들을 사용하는 우리 삶의 현장을 누빈다.역사 속 대장장이들이 어떻게 그려졌는지, 대장간이나 대장장이는 우리 문화에서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는지도 살핀다.저자는 또 대장간이 우리말의 아주 오랜 곳간임에 틀림 없다고 말한다.이 책에는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때 참전한 명나라군에 건넨 선물 중 휴대용 불붙이는 도구 부시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당시 이순신 장군이 부시를 일컬어 적었던 화금(火金)은 불을 일으키는 쇠라는 말이다. 부싯돌을 쳐서 불을 일으키는 쇳조각이 부시인데, 그 어원을 따져보면 불과 쇠가 합쳐져 이뤄진 말이다.이 책은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온 우리 대장간과 대장장이의 세계를 현장에서 관찰하고 정리한 결과물이다. 대장간과 관련한 거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대장간의 인문학적 향기를 다양한 관점에서 드러내고자 애썼다"고 말하는 저자는 대장간 현장과 거기서 일하는 대장장이들, 나아가 대장간에서 만들어낸 연장들을 사용하는 우리 삶의 현장 속을 누빈다. 또한 역사 속에서 대장장이들이 어떻게 그려졌는지, 대장간이나 대장장이는 우리 문화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는지도 살핀다. 이 책은 우리나라 대장간 다섯 곳, 일본의 다네가시마 대장간 한 곳의 현장 모습을 보여준다. 인천의 도심 한복판에 있는 네 곳 등인데, 이제는 모두 70대 이상의 노인 혼자서 일한다. 젊은 누구도 대장간 일을 배우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노인 대장장이들이 일을 그만두면 그 대장간들은 영영 사라지고 말 것"이라고 저자는 아쉬워한다.뭐니 뭐니 해도 가장 고마운 건 이때껏 대장간 현장을 지켜내온 이 땅의 나이 드신 대장장이 장인들이다. 힘에 부칠 때마다 대장간 현장을 찾아 그분들의 망치질 소리를 들으며 힘을 얻고는 했다.대장장이와 도구, 그리고 쇠. 대장간의 3요소라고 할 수 있다. 대장장이가 있어야 쇠를 달구고 두들겨서 뭔가를 만들 수 있다. 원자재인 철물이 없어도 대장간은 돌아가지 않는다. 기술을 가진 대장장이나 원재료인 쇠 말고도 화로, 모루, 망치, 집게 같은 필수 도구가 있어야 한다. 대장간 일은 쇠를 불에 달구는 작업이 우선이다. 화로에는 풀무가 따라붙는다. 바람이 없으면 화로에 불길을 일으킬 수 없기 때문이다.대장간 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성냥이다. 충청도 등 일부 지역에서는 대장간을 승냥깐이라 한다. 이 승냥이라는 말이 성냥에서 나왔다.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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