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덕진의 어떤 스케치- 모두는 누군가의 ‘해피엔딩’이다

@조덕진 입력 2018.12.18. 00:00

컵라면, 탄가루 가득한 수첩과 슬리퍼로 남은 24세 청년.

또 한 명의 20대 꽃다운 청년이 이 사회의 천박함에 목숨을 앗겼다.

소중한 아들이었던 고 김용균씨는 지난 11일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휴대폰 손전등에 의지해 석탄 컨베이어벨트 소음 점검 작업을 하다,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졌다.

"저희도 같이 죽었습니다. 그런 곳인 줄 알았더라면 어느 부모가 자식을 '살인병기'에 내몰겠어요. 저는 우리나라를 저주합니다"

어머니의 절규가 절절하다.

험한 노동환경에 자식 떠나보낸 참상이 어디 김군 어머니만의 일이던가.

냄비 같은 성격에 붕어 머리의 이 사회가 잊어버렸지 모를 일이지만 불과 2년전 비슷한 처지, 위험의 외주화에 내몰린 비정규직 10대 청소년이 서울 지하철 역에서 생명을 강탈당했다. 2016년 지하철 구의역 안전문 수리 중 전동차에 치여 숨진, 컵라면을 유품으로 남겼던 당시 19살의 김모군.

노동현장의 어린 청(소)년들의 죽음이 익숙한 사회라니.

사람 목숨을 담보로 하는 험한 일을 저임금의 비정규직, 어린 청(소)년에게 떠넘기는 이 사회를 당최 멀쩡하다고 할 수 있을까.

지난 2년, 10대 어린 아이를 기어코 죽임으로 내 몰고도 우리 사회는 아무 일 없던 듯 살아왔다. 노동자 생명, 핏덩어리의 사회 초년생을 보호하자는 그 흔한 파업 하나 만나지 못했다. 하기야, 비정규직의 노조 가입도 발로 걷어차 버린 대기업 노조, 그들로 상징되는 노동단체에 무얼 기대하랴.

그렇다고 그들 탓만 할 처지도 아니다.

90년대 후반 한 공부모임에서의 일이다.

"외국 유학을 했든, 박사든, 대학을 못 나왔든 비슷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비슷한 처우를 받는 것이 정상입니다"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마친 노동분야 전문가인 이 대학 강사의 설명은 당시 사회에서는 익숙치 않은 설명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만해도 석박사 소지자, 소위 고학력 화이트 칼라의 높은 연봉이 당연시 되던 시절이니.

우리사회 대기업 노조(정규직)도 그 박사의 지적처럼 비슷한 처우를 일궈냈지만 불행히도 그들만의 리그로 끝나버린 듯하고 우리사회는 여전히 심각한 학력주의에서 한 발자욱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학력으로, 그것도 서열을 매겨 차별하고, 취직후에는 본청이니 하청이니 또 하나의 계급을 만들어 다시 차별하고. 가장 안정적인 노동자라 할 대기업 노조, 최상층부에서 노동자 권익과 혜택을 최고로 누리는, 나눔과 연대에 있어 가장 여유롭거니와 책무가 있는 집단이라 할 그들은 자신들 밥 그릇을 챙기자고 비정규직을 걷어차고. 임금을 삭감하거나 노동시간을 줄여 노동자 해고를 막아내는 유럽 노동조합의 연대는 그림의 떡이다.

어린 노동자들의 죽음이 사실은 사회적 살인이나 다름없다. 위험의 외주화와 거대노조의 밥그릇 챙기기라는 천박함이 가져온 비극에 연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회는 언제나 '노동자'라는 별도 계급이 아닌, 일하는 '사람'으로 대접 할수 있을까. 얼마 전 둘러본 유럽의 사람대접을 떠올린다.

이해를 돕기 위해 굳이 비유를 하자면 대학 수위 아저씨와 교수 급여가 별 차이가 없는 것이 극히 자연스럽다. 비슷하거나 더 높기도 하다. 운전이나 이삿짐 운반 같은 사람의 품이 들어가는 노동은 아주 비싼 처우를 보장 받는다.

실력이라는 미명아래 학벌로 사람을 순위 매기지 않는다. 정규직, 비정규직 따지지않고 일의 경중이나 하중에 따라 처우를 정한다. 험한 일 한다고 얕잡아 보거나 후려친 돈으로 목숨을 담보로라도 일해야 하는 이들의 절박함을 거래하지도 않는다. 로봇이 사람을 대체하는 시대에 사람 품이 직접 들어가는 일은 훨씬 더 높은 처우를 보장한다.

무엇보다 우리 모두는 저마다 누군가의 '해핑엔딩'이다.

아트플러스 편집장 겸 문화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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