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칼럼- 체육계 패러다임을 바꾸자

@양기생 신문잡지본부장 입력 2019.01.24. 00:00

양기생 문화체육부 부장

연초부터 체육계가 미투(me too-나도 당했다)로 몸살을 앓고 있다. 쇼트트랙 국가대표이자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심석희 선수가 성폭행을 당했다며 조재범 전 코치를 추가로 고소하면서다. 앞서 조재범 전 코치는 선수 폭행 혐의로 고소당해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전직 유도선수인 심의용이 성폭행과 관련해 코치를 고소한 사건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체육계 미투가 일파만파로 확대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체육계 성폭력은 스포츠 강국의 부끄러운 모습"이라며 "철저한 조사와 처벌, 그리고 이런 폭력과 성범죄가 발생할수 없는 여건 조성에 최선을 다해주라"고 당부하며 제도적 뒷받침 마련을 지시했다.

대통령의 언급이 있자 국가인권위원회가 나섰다. 인권위는 빙상 유도 종목을 포함해 스포츠 인권 실태 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인권위는 스포츠 분야 폭력·성폭력 문제의 심각성이 십 수년 전부터 꾸준히 지적됐고, 다양한 기관들이 여러 대책을 시행해왔는데도 그동안의 노력이 사실상 효과가 없었다는 점에서 특별조사단 구성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인권위는 1년 동안 기획조사와 진정사건 조사를 진행하고 스포츠 폭력 및 성폭력 신고시스템을 새롭게 마련할 계획이다.

체육계의 미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4년 전 테니스계에서 유명 선수가 초등학교 시절 자신을 성폭행했다며 테니스부 코치를 고발해 징역 10년 형을 이끌어낸 적이 있다. 사건 이후 이 선수는 추가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제도적 뒷받침을 주장하고 있으나 체육회와 유관기관은 요지부동이다.

체육계 미투는 구조적 한계를 갖고 있는 후진국형 범죄행위다. OECD 가입 국가이자 선진국을 자부하는 우리로서는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미국의 경우 2017년 체조계 미투 성범죄 피의자에게 수백 년의 형을 선고하고 대학 총장을 비롯한 체조계 관련자들이 모조리 물러났다.

성적 지상주의에 빠져 있는 우리에게 이와 같은 자정 능력 있는가 반문하지 않을 수 없으며 불행하게도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성범죄를 저지른 지도자들이 징계를 받았지만 수 년 뒤 버젓이 현장으로 돌아오기 일쑤였다.어린 선수들이 이런 모습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 까 생각하면 기성세대로서 할 말이 없다.

어려서부터 수 년 동안 밀접하게 접촉하며 지도받고 훈련받는 선수는 폭력이나 성범죄에 대항한다는 생각 자체를 하기 어렵다.'너 운동 그만하고 싶어' 이 말은 선수들에게는 최악의 말로 통한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공부는 사실상 포기하고 운동에 전념해온 선수들로서는 '운동 스톱'은 사망선고나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을 뒷바라지 해온 부모의 얼굴을 떠올리거나 장래 꿈을 생각하면 저항이나 신고라는 단어가 머릿속에서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 약점을 이용한 폭력과 성범죄는 가장 저질적이고 악랄하다. 이번에 체육계에서 발생하는 범죄 행위에 대한 처벌 강화도 뒤따라야 한다.

폭력으로 얼룩진 훈련을 통해 얻은 금메달은 의미가 없다는 점을 선수와 지도자, 학부모이 모두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선수와 지도자에 대한 윤리교육도 강화하고 선수와 지도자의 관계가 수직에서 수평적 문화로 형성되도록 제도적 뒷받침을 마련해야 한다. 합숙과 도제식 훈련 문화도 바꿔야 한다. 시시때때로 비리가 발생하는 체육특기자전형도 전면 재검토 내지 폐지하는 방안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한다.

이번 미투 사건을 계기로 성적 지상주의나 엘리트 체육 중심의 패러다임을 전면 바꾸는 대전환이 필요하다. 공부를 병행하면서 운동에 전념하는 시스템도 마련해야 한다.무엇보다 성과주의에 물들은 국민들의 의식 전환이 절실하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지 못해 시상대에서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우리나라 선수를 자주 볼 수 있다. 메달 획득을 위해 수 없이 흘렸던 땀방울의 소중함을 인정하고 격려하는 국민들의 따뜻한 시선이 필요하다. 동메달을 목에 걸고 환하게 웃을 수 있는 분위기를 우리가 만들어줘야 한다.

체육계가 이번 기회에 뼈를 깎는 아픔 속에 거듭나는 모습을 기대한다.

슬퍼요
0
후속기사 원해요
0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mdilbo@mdilbo.com전화 062-606-7700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무등일보' '

댓글0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