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1중앙#
누가 고양이를 죽였나
윤대녕 지음/문학과 지성사/1만3천원
"나이가 들어가면서 K는 체념이라도 한 양 세상일에 점점 부심해졌다. 그것이 체념보다는 묵인에 가깝다는 사실을 속내로는 번연히 알면서도 말이다. 그렇게 열정이나 희망이라는 말을 잊어버린 대신 어느덧 타협과 권태를 적당히 즐길 줄 아는 중년의 나이가 되었다. 그런 K에게도 온전한 기쁨이라는 게 있다면 나날이 미루나무처럼 성장하는 딸을 지켜보는 일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조문객의 행렬에 함께 서 있게 되었을 때, K는 불현듯 허파가 뒤집히는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딸의 죽음에 자신이 직접적으로 관계돼 있음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이었다. 더불어 3백 명이 넘는 여린 생명의 죽음과 실종에도 자신이 깊이 연루돼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K는 치를 떨었다. 섣부른 체념과 방관이, 손쉬운 타협과 무관심이 이다지도 커다란 업이 되어 돌아올 줄 미처 몰랐던 것이다. "('서울-북미간' 중에서)
1990년 '문학사상'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소설가 윤대녕이 8번째 소설집을 내놨다.
특히 이번 소설집에서는 '세월호' 참사 이후 작가 자신에게 나타난 변화를 나타내 눈길을 끈다.
밤마다 거미줄을 치듯 한 줄 한 줄 글을 씀으로써 작가는 스스로를 작가로 인정하게 됐다. 표제작을 비롯해 '경옥의 노래' '밤의 흔적' '백제인' 등 8편이 실렸다. 소설집에서 여행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떠올리는 이미지가 아니다. 죽은 자의 흔적을 좇는 여행, 죽고자 떠나는 여행, 사랑하는 이의 죽음으로부터 기원한 여행 등으로 그려진다.
윤대녕의 작품에서 '여행'은 낯선 것이 아니다. 그의 이전 작품 속 인물들은 '존재의 시원'을 찾아 길 위를 떠돌았고, 그 여정은 등장인물의 예민한 감수성과 신화적 이미지들이 결합된 언어로 장관을 이뤘다.
그러나 이번 소설집에서의 '여행'은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씌어진다. 그것은 죽은 자의 흔적을 좇는 여행, 죽고자 떠나는 여행, 사랑하는 이의 죽음으로부터 기원한 여행으로, 이번 소설집에서 윤대녕의 인물들이 떠나는 모든 여행은 죽음을, 그것도 아주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죽음을 싸고돈다.
'누가 고양이를 죽였나'에 실린 여덟 편의 작품에서 등장인물들이 사는 '이곳'은 화염과도 같은 재난의 현장이거나 가까운 이를 떠나보내는 애도의 공간이거나 폭력과 억압으로 얼룩진, 혹은 오해와 욕망으로 비틀린 황폐한 현실이다. 그러나 이야기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윤대녕이 '작가인 나의 죽음'을 경험하고도 다시 한 줄 한 줄 글을 써내려가 마침내 스스로를 작가로 다시 인정한 것처럼, 이방에서 헤매던 인물들은 다시, 삶 쪽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딘다.
이번 소설집 안에서의 여정이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 윤대녕 특유의 섬세한 문체의 힘도 여전해서 이번 소설집을 통해 독자들은 더욱 깊고 넓어진 작가의 문학 세계를 확인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내면을 파고드는 예리한 문장에 마음을 빼앗길 것이 분명하다.
여덟 편의 작품에서 등장인물들이 사는 곳은 화염과도 같은 재난의 현장이거나 가까운 이를 떠나보내는 애도의 공간이거나 폭력과 억압으로 얼룩진, 혹은 오해와 욕망으로 비틀린 황폐한 현실이지만, 그들은 다시, 삶 쪽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딘다.
저자 특유의 섬세한 문체의 힘, 내면을 파고드는 예리한 문장이 돋보이는 이번 소설집을 통해 더욱 깊고 넓어진 저자의 문학 세계를 확인할 수 있다. 김옥경기자 okkim@srb.co.kr
- 시와 그림으로 피어난 꽃의 절규와 함성 시는 시인의 얼굴이자 내면이다.시인은 시를 통해 속내를 털어놓고 표정에 담지 못한 언어를 끄집어낸다.박노식 시인의 시도 이와 다르지 않다.박노식 시인이 최근 신작시집을 낸 데 이어 올봄을 넘기지 않고 시화집을 내놓았다.그의 첫 시화집 '기다림은 쓴 약처럼 입술을 깨무는 일'(달아실 刊)을 펴냈다.박노식 시인은 등단 후 9년 동안 5권의 시집을 냈고, 이번에 첫 시화집을 내는 것이니 부지런히 시를 쓴 셈이다. 그 원동력이 어디에 있냐고 묻자, "세상과 싸우기 위해, 밥벌이를 위해 삼십여 년을 접어두어야 했던 만큼 '시'를 미치도록 그리워했다"며 "남보다 늦은 나이에 꿈을 향해 걸음을 내디딘 만큼 더 치열하게 시 창작에 몰두하였다"라고 답했다.시화집 '기다림은 쓴 약처럼 입술을 깨무는 일'에는 모두 37편의 시가 실렸는데, 각 편마다 꽃말을 제목으로 하고 부제로 꽃 이름을 달았다. 각 시편마다 서양화가 김상연의 그림이 곁들여져 있어, 꽃시(詩)와 꽃말과 꽃그림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시화집이라고 할 수 있다.가령 "자기애"라는 꽃말을 지닌 "수선화"를 시인은 이렇게 시로 적고 있다."마주 앉아서 그대의 말끝을 따라갈 때면 어느새 저녁이 오고 나의 눈빛은 강 하구에 이릅니다/가만히 보면 그대 얼굴이 우물 같아서 달이 뜨고 거기에 내 얼굴도 떠 있습니다/그대는 흰 꽃잎으로 나는 노란 꽃잎으로 다시 태어나서 우리는 지금 서로의 운명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자기애-수선화' 전문)"모든 슬픔이 사라진다"라는 꽃말을 지닌 "미선나무꽃"은 또 이렇게 시로 풀어냈다."아득한 기억처럼 슬퍼지는 시간들이 있지요/ 폭발 직전의 꽃망울은 순수의 가지에 놓여서 눈을 감아요/ 지난 노래를 부르지 말아요/ 한 장 꽃잎이 강물에 떠내려간들 누가 울어주나요/ 눈물은 온몸에 있어요/ 온몸이 울어요/ 당신이 다시 돌아와 내 눈물의 노래가 되었어요('모든 슬픔이 사라진다-미선나무꽃' 전문)독자들은 시화집을 통해 37개의 꽃과 꽃말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다. 그런데 꽃말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사람들이 자신의 삶과 이야기를 꽃에 투영한 결과이며 오랜 세월 인구에 회자되면서 꽃말로 굳어진 것이 아닐까 싶다.시인이 이번 시화집의 부제를 '꽃말을 시로 읊은 가슴 저민 자화상'으로 명명했다. 시인이 정작 쓰고 싶었던 것은 꽃이 아니라 꽃 너머, 꽃말이 아니라 꽃말 너머, 그러니까 우리 모두의 자화상인 셈이다.박노식 시인은 이번 시화집 출간에 맞춰 '꽃말시'를 화가 김상연이 그림으로 표현해 낸 특별한 시화전을 연다.시화전은 광주시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에서 5월2~14일까지 박노식 시인의 첫 시화집 '기다림은 쓴 약처럼 입술을 깨무는 일' 출판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마련됐다.전시회 첫날인 5월 2일 오후 6시 오프닝과 출판기념회를 함께할 예정이다.김상연 화가는 "기존의 시화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그림, 화가의 눈으로 시를 재해석한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며 "시화집에 인쇄된 그림과 원화가 주는 느낌은 또 다른 것이니 전시회에 오셔서 직접 감상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박노식 시인은 "'꽃말시'는 처음부터 시화집을 목적으로 구상했었다. 시집 한 권 분량의 60여 편을 염두에 두었으나 시화집으로 묶기에는 다소 벅찰 것이라며 그가 말렸다. 그래서 37편에 머물렀으나 꽃만 남고 훗날 그는 구름이 되어버렸다"며 "더는 가슴 저미는 일이 없길 바라므로 나는 죽은 사람처럼 이 시화집을 열어보지 못할 것이다"고 말했다.시인은 차마 더 이상 열어보지 못하겠다고 하니 시화집을 열어 꽃말시를 읽는 일은 우리들의 몫이다..박노식 시인은 광주에서 태어나 조선대 국문과를 나와 지난 2015년 '유심' 신인상을 받고 등단했다. 그동안 시집 '고개 숙인 모든 것' '시인은 외톨이처럼' '마음 밖의 풍경'을 펴냈으며, 화순 한천면 오지에서 시 창작에 몰두하고 있다. 지난 2018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 수혜했다. 현재 광주 동구 '시인 문병란의 집'큐레이터로 활동 중이다.김상연 화가는 화순에서 태어나 전남대와 중국 미술대학원을 거쳐 현대미술을 특유의 기법으로 회화와 설치, 미디어, 판화 등 다양한 장르로 표현, 주목을 받고 있다.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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