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터)살만한 곳

@무등일보 무등일보 입력 2019.02.08. 00:00

택리지는 조선 후기 실학자 이중환이 말년에 저술한 인문 지리서다. 택리지는 "살기 좋은 마을을 선택 한다"는 뜻이다. 이 책은 우리나라 산천, 인물, 풍속, 정치 등을 기록한 인문 지리서로 풍수지리학의 원조격이다.

이중환은 말년에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보고 들은 얘기를 택리지에 담았다. 내용은 크게 사민 총론, 팔도 총론, 복거 총론, 총론 등 4장으로 이뤄져 있다. 그 중 복거 총론에서 살만 한 곳에 대해 4가지 조건을 들었다. 첫째 조건은 지리다. 둘째가 생리, 셋째가 인심, 넷째가 아름다운 산과 물이다.

첫째 조건으로 꼽은 지리는 물과 흙빛, 들판 등 형세로 이른바 풍수학적인 지리다. 그중에서도 이중환은 물은 재물을 관장하는 주요 요소로 봤다. "물의 입구가 엉성하면 아무리 살림이 많아도 여러 대로 전하지 못하고 저절로 없어진다"고 경계 했다.

생리(生利)란 그 땅의 생산물에서 나오는 이익을 말한다. 이중환 당시는 생리중 기름진 땅을 으뜸으로 쳤다. 농업 사회인 탓에 기름진 땅이 필요했을 것이다. 세 번째 조건인 인심은 "풍속이 좋지 않으면 자손에게도 해가 미친다"고 했다. 인심이 착하지 않으면 반드시 후회 할 일이 생긴다고 경고 한다. 살만한 곳의 마지막 조건은 산과 물이다. 그런데 산수가 좋은 곳은 생리가 박약한 곳이 많다고 했다. 경치는 좋은데 먹을 것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그래도 10거리 혹은 반나절 거리에 산수 좋은 곳이 있어 시름을 풀고 올 정도는 돼야 살만하다고 했다.

이런 조건을 따져 전라도에서는 구례를 콕 집어 살만한 곳으로 추천했다. 지리산 덕분에 좋은 토양, 먹거리, 인심이 좋아 살기 좋은 고장으로 구례를 꼽은 것이다. 탁견이다.

그러나 이중환이 오늘을 살면 뭐라 할까. 네 가지 조건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고 했을 것이다. 아니 살 수 없다고 했을지 모른다. 시도 때도 없이 덮치는 미세 먼지 때문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인심 좋고, 산수가 좋다 한들 숨 쉬기 힘든데 어떻게 살만하다고 추천 하겠는가. 뿌연 하늘에 온갖 중금속이 들끓는 대한민국에서 요즘 살만 한 땅이 어디인가.

지금 같아서는 지리도 생리도 필요 없으니 숨쉴 만한 곳이면 좋겠다. 아마도 이중환이 이 시대를 살았으면 살만한 곳 조건에 하나를 더했을 것이다. 이웃을 잘만나야 한다고 하지 않았을까 한다. 환경부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지난달 한반도를 덮친 최악의 미세먼지 75%가 중국에서 건너 왔다고 한다. 중국 탓에 대한민국 풍수지리학은 아무짝에도 쓸모없게 되고 말았다. 온 한반도가 뿌연 먼지로 뒤 덮이고 만 것이다.

다가오는 봄이 더 걱정이다. 중국산 미세 먼지로 한바탕 곤욕이 예상된다. 그렇다고 이사 갈수도 없는 노릇이니 답답하다. 미세 먼지에는 하루 1.5L이상 물이 건강에 좋다고 한다. 깨끗한 물이라도 열심히 마시자.

나윤수 칼럼니스트 nys804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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