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칼럼> 삶 송두리째 파괴하는 스토킹죄가 달랑 벌금 5만원이라니

입력 2020.05.05. 14:04 수정 2020.05.05. 19:17 댓글 0개
임화영 법조칼럼 변호사(법무법인 무등 종합법률)

청와대 게시판에 국민 청원이 하나 올라왔다. "흉악한 스토커를 두려워하는 대한민국 삼십대 미혼 여성입니다"의 청원 주인공은 한국 여성 바둑을 대표하는 바둑 여제 조혜연 9단이다. 조혜연 9단은 1년여의 스토킹을 참다못해 국민청원까지 올린 것이다. 최근 구속된 40대 A씨는 조혜연 9단이 운영하는 바둑 학원까지 찾아와 온갖 행패를 부려 초등학교 원생들이 피신할 정도 였다.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n번방 사건 가담자중 하나인 사회복무요원 강씨의 스토킹 행적도 놀랍다. 강씨는 과거 자신의 담임교사였던 A씨를 무려 7년여 간 스토킹하며 끔찍한 욕설과 협박을 일삼았다고 한다. 결국 강씨는 2018년 협박죄 등으로 징역 1년 2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여기서 끝내지 않고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하며 또다시 피해자의 개인정보를 빼내 n번방 운영자에게 A교사의 딸이 다니는 어린이집을 알려주며 "어린 딸을 살해해 달라"는 청탁까지 했다니, 강씨의 스토킹 행적이 거의 엽기 수준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 스토킹은 유명인과 일반인을 가리지 않는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8년도 스토킹 범죄 단속·처리 건수는 583건에 이른다. 그러나 이는 빙산의 일각으로 드러나지 않은 스토킹은 훨씬 많을 것이다. 이런 상황인데도 현재 우리나라에는 스토킹 행위 자체를 처벌할 수 있는 법률이 없다. 사안에 따라 협박, 명예훼손, 모욕 등의 혐의를 적용하기도 하지만, 통상적으론 경범죄 처벌법 제3조 제41호(지속적 괴롬힘)를 적용해 최대 10만 원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의 형으로 처벌하고 있을 뿐이다. 실제 조혜연 9단도 처음에는 3차례 신고 끝에 달랑 벌금 5만원이 전부였다. 일상을 무너뜨린 스토킹이 담배 공초 버린 경범죄 수준이니 누가 경각심을 갖겠는가. 스토킹이 공개되자 "문자 몇 통, 전화 몇 번 받는 게 무슨 피해냐. 언론에 노출돼서 자신이 더 피해를 봤다"고 당당히 말하는 것이 세태다.

스토킹은 강력 범죄를 알리는 전조로 나타나는 경우도 많다. 한 방송사가 2018년도 살인과 살인미수로 선고가 난 법원 판결을 전수 분석한 결과 전체 사건의 30%에서 스토킹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한다. 이 가운데는 스토킹을 당하는 과정에서 경찰에 신고를 하거나, 경찰의 신변 보호까지 받았지만 범행을 막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20대 국회에서만 5개의 스토킹 법안이 발의됐지만 단 하나도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이제 스토킹은 더 이상 묵과 할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 수법도 날로 흉포해 지고 있다. 더 늦기 전에 최소한 스토킹의 유형을 나열하는 방식으로라도 처벌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 스토킹을 당한 피해자는 자신이 감시당하고 있다는 두려움에 평생을 불안에 떨며 살아야 할 만큼 후유증도 심각하다. n번방 사건이 국민적 공분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은 것처럼 독버섯처럼 번진 스토킹 범죄도 국민적 관심으로 일벌백계해야 한다. 조혜연 9단 초등학교 원생들은 아직도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어린 삶을 송두리째 파괴하는 스토킹이 벌금 5만원이라면 이제는 국민이 나서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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