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칼럼> 체육계에 만연한 폭력을 뿌리 뽑으려면

입력 2020.07.28. 09:33 수정 2020.07.30. 18:18 댓글 0개
이명기 법조칼럼 변호사(법무법인 21세기 종합법률사무소)

지난 달 철인3종 경기 최숙현 선수가 소속팀 코치진과 일부 선배들의 가혹행위를 견디다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해 큰 충격을 주었다. 22살의 최선수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그 사람들의 죄를 밝혀 달라"는 것이었다. 최선수는 대한체육회 스포츠인권센터, 대한철인3종경기협회, 경찰, 경주시청, 시체육회 등에 자신이 당한 가혹행위를 호소했지만 이들은 "피곤하고 복잡하게 만들지 말라"는 태도로 최선수의 호소를 묵살해 사태를 키우고 말았다.

그렇다면 후진적인 체육계 폭력은 왜 근절되지 않고 반복되는 것일까. 우선은 선수들이 지도자에게 밉보이는 순간 대회 출전이 무산되고, 진학, 스카우트 등에서 철저하게 밀려나므로 선수 본인이 무언가 부당함에 맞서려는 시도 자체가 큰 용기가 필요하게 된다.

또한 어렵사리 용기를 내 문제제기에 나서도 일선에서 지도자로 재직할 정도인 사람은 그 종목에서 나름 유명한 선수출신이거나 협회에 연줄도 있는 사람이어서 어지간한 사건은 가볍게 묻히는 것이 다반사이므로 선수들은 용기내기가 어려운 구조다. 즉 선수가 어떤 부당하고 가혹한 행위에 문제제기라도 하려면 결국 선수 생명을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간의 실태를 보면 그마저도 그때뿐이거나 시간이 지나면 유야 무야 되었었다.

최숙현 선수의 비극은 이런 후진적 구조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실제 최선수의 극단적인 선택 앞에서도 관련자들은 곧 드러날 사실도 부인으로 일관하고 있다. 지속적인 폭력에 대해 최선수가 선수 생명은 물론 삶 전체를 걸고 "살려 달라"고 호소 했지만 누구하나 귀기울이지 않았던 것이다. 최선수를 죽음에 이르게 한 인물로 지목된 전 경주시청의 감독과 선수들은 고2때부터 지도하였으므로 10여년의 가혹행위를 했을 것으로 쉽게 짐작되지만 입을 맞춘 듯 "폭력은 없다"였다.

최선수의 죽음은 우리 체육계 내에 만연한 인권 침해가 굳어져 터져 나온 빙산의 일각일지 모른다. 또다시 체육계와 당국자들은 부랴부랴 무슨 대책을 마련한다고 난리다. 그러나 문제를 놔두고 대책만 번드르르 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가해자들의 태도에서도 읽을 수 있다. 가해자들은 반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사과할 일없다"는 가해 감독의 한마디로 우리 체육계에 얼마나 죄의식 없는 폭력이 만연한 지를 실감하게 된다.

가해자들의 뻔뻔한 자세도 충격적이지만 관련 단체들의 행태는 더 한심하다. 최선수가 극단적인 선택에 앞서 여러 경로를 통해 구조 요청을 했음에도 아무도 손잡아 주지 않았다는 현실이 더 큰 좌절감에 빠져들게 한다. 최선수가 호소하였던 여러 관련 기관 중 단 한 곳만이라도 관심을 가져주었더라면 전도양양한 젊은 선수의 죽음만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안타깝기 그지 없다.

최선수의 비극은 우리 사회 전체에 큰 숙제를 남겼다. 몇해전 쇼트트랙 심석희 선수와 유도의 신유용 선수의 미투 때도 떠들썩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그 이후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했는지 자괴감마저 든다. 사건이 터질 때 마다 체육계는 가해자 엄벌과 재발방지 약속을 되풀이 한다. 사람들은 분노로 들불처럼 타올랐다가 어느 샌가 슬그머니 잊어버린다.

그렇다면 이제는 더 이상 선수 인권 문제를 체육계의 자정노력에만 맡겨둘수는 없다. 위계가 엄격한 선후배의 인맥으로 연결된 체육계 특성상 이들에게 문제를 맡겨둔다는 것은 고양이 한테 생선가게 맡기는 꼴이다. 최선수 역시 대한체육회 스포츠인권센터, 대한철인3종경기협회, 소속팀인 경주시청, 시체육회 모두에게 진상을 조사해달라고 진정하였지만 허사였다. "좋은게 좋다"는 식의 끼리 끼리 문화를 뛰어넘지 못한 것이다.

문제는 피해자들의 이야기가 제대로 전달되기도 전에 비정상적인 수단에 의해 묵살되는 구조를 어떻게 바꿀것인 가에 달려 있다. 즉 체육계 내 자정노력을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피해자의 이야기를 진정성 있게 들어줄 토대부터 만들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별도의 외부기관도 만들어야 한다. 더 나아가 성적 지상주의라는 오랜 적폐도 털어내야 한다. 맞으면서 딴 올림픽 금메달 100개가 무슨 대수인가. 아직도 자신들의 고통에 대해 말하는 것을 주저하는 피해자들이 많을 것이다.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체육계 스스로 변화되고 나아지기를 기다리는 것은 백년하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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