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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벌어지는 해괴한 일이 한둘이 아닌데 그 중 특히 육사에 설치한 홍범도 장군 흉상을 철거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홍범도 장군에 대해서는 우리 국민이 잘 몰랐다. 내가 초중고 다닐 때는 한국사 교과서에 아예 홍범도라는 이름이 등장하지 않았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러나 문재인 정부 때 카자흐스탄에서 장군의 유해를 국내로 봉환해와 국립묘지에 모셨고, 육사에 장군의 흉상을 설치함으로써 비로소 우리 국민이 장군의 이름 석자를 알게 됐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자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철거한다니 참으로 개탄스럽다.
홍범도(1868-1943)가 누구인가. 평양에서 머슴의 아들로 태어나 머슴으로 살았다. 물론 학교 문전에도 못 가봤다. 출생 이틀 뒤 모친이 사망했고, 아버지가 동네 젖 동냥을 해서 아들을 키웠다. 아버지마저 홍범도가 9살 때 돌아가셨다. 머슴 일을 오래 하다가 군인으로 들어가 4년간 군인 생활을 했다. 이때 경험이 나중에 독립전쟁 때 큰 도움이 됐다. 그 뒤 황해도 제지공장에 들어가 몇 년 일했고 함경도 삼수, 갑산 지역에서 산포수 생활을 했다. 장군의 사격 실력은 입신의 경지여서 20미터 떨어진 곳에 빈 유리병을 이쪽 방향으로 ㅤㄴㅜㅍ혀놓고 총을 쏘면 총알이 유리병 입구를 통과해 병 바닥을 깨뜨릴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학교 교육을 받지 못했으나 젊을 때부터 나라 잃은 설움을 잘 알았고, 나라의 독립 쟁취가 평생 삶의 목표였다. 1943년 머나먼 카자흐스탄에서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도 조국의 상태를 걱정했다.
젊은 시절 함경도 지역에서 산포수들을 모아 의병 전쟁에 적극 나서 여러 차례 일본 군경과 싸워 이겼다. 블라디보스톡 지역으로 이주해 안중근 의사를 만났다. 1920년 만주의 봉오동 전투에서 일본군을 크게 깨부쉈다. 그해 말 다시 청산리 전투에서 김좌진 장군과 협력하여 일본군을 대파하는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이 두 개의 승리는 일제 강점기 독립전쟁 3대첩에 포함된다. 뿐만 아니라 멀리 임진왜란, 동학혁명까지 생각할 때 해전의 이순신의 승리를 제외하고는 우리가 침략자 일본에 대해 거둔 육전에서의 최대의 승리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위대한 승리를 거둔 장군이 홍범도다. 나는 몇 년 전 대구 사람 몇몇과 함께 만주 독립투쟁 유적지 방문을 한 적이 있다. 용정의 용두레 우물을 보았고 일송정에 올라 해란강도 바라보았다. 시인 윤동주의 집에도 가보고 묘소도 참배했다. 더불어 봉오동 전적지 기념비, 청산리 대첩 기념비도 방문해 애국선열의 넋을 기린 바 있다.
봉오동, 청산리 대첩 후 장군은 러시아로 가서 독립전쟁을 이어갔으나 사정은 매우 어려웠다. 막 성립한 소련 정부는 대한독립군의 무기를 회수하고 소련 군대 속에 편입시켜 지휘를 받으라고 했다. 홍범도 장군은 1922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동방피압박민족대회에 참석했다. 조선 대표로는 이동휘, 박헌영, 김단야, 여운형, 김규식, 조봉암 등 50여명으로 제일 많았고, 여러 나라를 합쳐 100명 넘는 대표들이 모였다. 일본 대표로 온 저명한 사회주의자 가타야마 센은 특별히 홍범도 장군을 예방하여 존경을 표했다. 레닌과 트로츠키는 이미 홍범도 장군의 명성을 익히 들은 바라 특별히 따로 홍범도 장군을 초청해 봉오동, 청산리 대첩에 대해 질문했다. 장군은 작은 수첩에 적어둔 당시 전투 상황을 보여주면서 설명했고 레닌과 트로츠키는 장군에게 존경을 표했다. 그 자리에서 레닌은 홍범도 장군에게 이름이 새겨진 권총 한 자루, 장교 외투, 그리고 약간의 금화를 선사했다. 장군은 이를 자랑스레 여겨 그 뒤 자주 이 권총을 차고 다녔다. 홍범도 장군은 일본놈들과 싸울 때는 전혀 떨리지 않는데 레닌 앞에 가니 떨리더라고 주위 사람들에게 말했다. 레닌은 실제 조선의 독립을 적극 지원했고, 독립운동에 군자금으로 보태쓰라고 금덩어리 몇 개를 조선 대표에게 주었는데 그게 국내 반입 과정에서 어디론가 사라지고 독립운동 계파간에 서로 의심하고 공격하는 터무니 없는 결과를 빚기도 했다. 당시 세계에서 조선의 독립운동을 지지하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었고, 미, 영, 불, 독 등은 서로 많은 식민지를 차지하려고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강도 일본과 싸우는 약소민족 조선을 응원해준 나라는 소련이 유일했다. 물론 임시정부 활동을 용인해준 중국이 있었으나 중국은 제 코가 석자라 남의 나라 도와줄 형편이 못됐다. 이런 상황에서 홍범도 장군이 소련 공산당에 가입한 것을 트집잡아 흉상을 철거하겠다는 국방부과 육사는 도대체 역사의식이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홍범도 장군이 1927년 소련 공산당에 가입한 것은 사실인데 그것은 이념상의 행동이 아니고 소련에 적응해서 살아가기 어려운 동포들의 권유에 따른 동포애의 발로일 뿐이다. 홍범도는 오직 강도 일본 타도밖에 생각하지 않은 열혈 애국자다. 인간적으로 매우 소박, 겸손했고 부하들을 친 동생처럼 사랑했다. 독립운동이 계파간에 분열해 싸울 때에도 싸움을 말리고 통합하려고 동분서주했다. 그는 젊을 때부터 독립운동으로 일제의 체포 대상이었다. 일제는 홍범도를 잡기 위해 그의 부인을 잡아 가두고 모진 고문을 가해 부인은 옥사했다. 장남은 독립전쟁에서 전사했고, 차남은 병사했다. 그는 한 평생을 오직 조국 독립에 바쳤다.
그런데도 홍범도 흉상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백선엽 동상을 세운다는 말이 나온다. 백선엽이 누구인가. 그는 일제 강점기 시라카와 요시노리(白川義則)로 창씨개명했다. 시라카와 요시노리가 누군가. 1932년 상하이 홍구공원에서 윤봉길 의사가 던진 도시락 폭탄에 폭사한 일본의 육군 대장이다. 시라카와의 원수를 갚는다고 그의 이름으로 창씨개명하고 간도특설대에 들어가 독립운동가를 잡으러 다녔다. 백선엽은 미 군정 시기에는 장군의 계급장을 달고서도 미군 상사 앞에서 '옛 서'(Yes, Sir)라며 저자세를 보여 옆의 한국 군인들이 창피하게 여겼다는 기록도 있다. 홍범도와 백선엽을 비교해보면 너무나 명명백백하다. 우리 육사 생도들이 누구를 모범으로 삼고 애국심과 군인정신을 길러야 하는지. 이런데도 홍범도 흉상을 철거하려는 국방부는 도대체 어느 나라 국방부인가. 이정우(경북대 명예교수, 전 대통령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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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아, 김포! 그 열정과 분노가 부럽다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 와!" 평생을 여성과 노동, 계급 문제 연구에 헌신한 캘리포니아주립대 법대 명예교수 조앤 윌리엄스의 말이다. 그는 교육방송(EBS) 다큐멘터리 '인구대기획 초저출생' 제작진으로부터 한국의 합계출산율이 0.78명이라는 사실을 듣고 양손으로 머리를 부여잡으며 그렇게 외쳤다. 믿기지 않는다는 듯 "그 정도로 낮은 수치의 출산율은 들어본 적도 없다"면서 말이다.인구학자인 서울대 교수 조영태는 지난해 한국의 합계출산율이 세계 최저인 0.78, 그중에서도 서울이 0.59를 기록한 것을 두고 '서울멸종론'을 제기했다. 올해 2분기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701, 서울은 0.53으로 '서울멸종'에 한걸음 더 다가섰다. 그러나 우리는 의연하다. 한국이 망하게 생겼다고 놀라는 사람도 없고 이대론 정말 안된다며 핏대를 올리는 사람도 없다.한국은 서울에 부, 권력, 일자리, 문화적 향유 기회 등 좋다는 건 하나도 빠짐없이 집중시켜놓고 전국의 청년들에게 "인간답게 살려면 서울로 와!"라고 외치는 이상한 나라다. 서울 진입과 생존을 위한 경쟁이 워낙 살인적인지라 결혼과 출산은 꿈도 꾸기 어려운 사치가 된다. 서울의 합계출산율이 0.53이라는 게 그걸 잘 말해준다.청년들만 서울로 가나? 의사들도 간다. 다음과 같은 최근 기사 제목들이 말해주듯이 말이다. '대책 없이 무너지는 소아 응급실…지방은 이미 '번아웃'', '인구 1만명당 의대 정원, 서울은 0.87명인데… 경북 0.19명 경남 0.23명', '노인 1천명당 의사 수, 경북 6명-서울 20명', '광주·전남·북 환자 4만명 서울대병원에 938억 부담', '울산 울리는 울산대 의대…"왜 울산 놔두고 서울서 수업하나"'한국형 계급투쟁에서 가장 중요한 관문으로 꼽히는 이른바 '명문대학'은 대부분 서울에 있기 때문에 지방의 인재를 빨아들임으로써 지방에 삼중고(三重苦)를 강요한다. 첫째, 인재 독식으로 사실상 지방대에 큰 타격을 가한다. 둘째, 지방 출신 학생들의 학비와 거주비 등 지방 재원의 역외유출을 초래한다. 셋째, 서울 맛을 본 지방 학생들은 지방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나중에 출세해서 국회의원, 도지사, 시장 등을 하고 싶을 때에만 고향을 찾지만, 임기를 마치면 다시 서울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다.이 정도면 지방민들이 모두 다 들고 일어나서 대대적인 시위를 벌일 만도 하건만 그런 법은 없다. 걸핏하면 시위를 벌여 '시위 공화국'으로 소문난 한국이지만,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이해관계가 걸려 있지 않으면 그 어떤 일이 벌어져도 순한 양처럼 순응하는 게 한국인들이다. 스코틀랜드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나의 손가락의 상처보다 전 세계의 파멸을 더 선호하는 것은 이성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한국인은 매우 이성적인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그렇게 순한 한국인들 중 일부가 최근 뜨거운 열정과 분노로 독설을 퍼붓는 일이 벌어졌다. 김포의 서울 편입으로 대변되는 여당의 '메가 서울' 전략 때문이다. 이 전략은 김포를 넘어서 광명·구리·하남·고양·부천 등으로 확대될 수도 있다나. 도대체 누가 열정·분노·독설로 들끓는가? 다음과 같은 기사 제목들을 보면 대충 알 수 있겠다.'허찔린 민주당 "김포, 서울 편입? 국힘 나쁜 선거전략" 격앙', '여당의 '메가시티 서울' 추진에 민주당 "또 서울공화국이냐"며 역공', '경기도 "집권여당 대표가 혹세무민" 민주당 "나쁜 총선전략"', '김동연 "김포 서울 편입 추진, 지방 죽이는 대국민 사기극"', '국힘 유정복 인천시장 "김포 서울 편입은 포퓰리즘 정치쇼"'나는 이런 비판에 동의하면서도 뭔가 좀 이상하고 어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의 비판들엔 부정적인 의미로 '서울공화국'이라는 표현이 사용되었는데, 이게 비판의 의미로 이렇게까지 많이 동원된 적이 있었던가? 그것도 주로 수도권에서 '서울공화국'을 비판하다니, 언제 이런 적이 있었단 말인가? 아, 김포! 그 열정과 분노와 독설이 부럽다는 생각을 내내 떨치기 어려웠다.이건 선거의 힘이자 이기심의 힘인가? 그간 수도권은 지방을 상대할 때엔 단일대오였는데, 수도권 내에서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문제가 빚어지자 비로소 '서울공화국'의 문제가 눈에 보이게 된 걸까? 그간 국가적 차원에서 어떤 일이 벌어져도 그러려니 하고 침묵하던 공직자들이 총선을 앞두고 일어날 수 있는 손가락 부상에 대한 염려, 아니 공포로 궐기할 생각을 하게 된 걸까?냉소가 아니다. 비아냥도 아니다. 진심으로 김포 문제를 둘러싸고 분출한 열정과 분노와 독설이 부러워서 하는 말이다.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다고 외면할 게 아니라 지방소멸과 서울멸종, 즉 국가의 폭망 가능성에 대해 그런 열정과 분노와 독설을 보여줄 수는 없는 걸까? 아니, 이건 지방민들이 더 고민해야 할 문제다. 왜 지방민들은 열정과 분노와 독설을 잃어버렸는가? 왜 그걸 자신이 증오하고 혐오하는 진영의 지도자 또는 우두머리를 욕하는 데에만 쏟아 붓는가?우리 사회를 자세히 관찰해보자. 시위를 많이 하는 집단은 시위 조직에 많은 인력과 돈을 쓰면서 연구와 고민을 한다. 시위에 참여하지 않으면 보복하는 응징의 수단도 갖고 있다. 공익을 표방하는 집단도 있긴 하지만, 사실상 사익 추구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그게 나쁘다는 뜻이 아니다. 집단 구성원의 '손가락의 상처'에 응답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반면 지방소멸과 서울멸종 가능성에 대응하는 건 그걸 해낼 수 있는 주체가 없다. 물론 이론적으론 정부와 정치권이 그 일을 해야 하지만, 이들은 여론조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여론의 호응이 없으면 결코 움직이지 않는다. 그런 여론은 없다. 앞서 말한 진영간 전쟁의 일환으로 벌어지는 '증오·혐오의 정치'만이 있을 뿐이다.'증오·혐오의 정치'에 중독돼 있으면서도 자신이 공익과 사회와 국가를 생각하는 깨어 있는 시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엄청난 착각이다. 특정 세력을 타도하거나 배제하는 걸 전제로 하는 정치참여는 아예 하지 않는 게 낫다. 오히려 조용히 사익 추구만 해주는 게 애국에 도움이 된다. 우리는 모두 더불어 같이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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