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칼럼> 하물며 소수의 폭정이랴

입력 2023.09.21. 10:56 수정 2023.09.24. 19:02 댓글 0개
공진성 아침시평 조선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지난 8월 학생들과 함께 독일에 다녀왔다. 지역사회 공동체성 제고를 위한 선진 이민사회 방문조사였다. 함부르크 반츠벡 구의 초청을 받아 그곳을 먼저 방문했다. 독일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베를린과 함부르크에는 그만큼 이주민 수도 많다. 베를린 주민의 약 36%가, 함부르크 주민의 약 37%가 이주배경을 가지고 있다.

구청장과의 대화 시간에 한 학생이 물었다. 이주민 통합을 위해서는 선주민의 생각과 태도도 함께 변해야 하는데, 어린이는 학교에서 정규교육을 통해, 한창 일할 나이의 성인은 직장에서 같이 일하면서 통합에 필요한 지식과 태도를 배운다면, 은퇴자처럼 나이 든 사람을 교육하는 정책은 있나? 리첸호프 구청장은 이렇게 답했다. 자유주의 사회에서 어떤 생각이나 태도를 시민에게 주입하거나 강요할 수는 없다, 특히 성인은 자기 결정 능력과 권리가 있으므로 정부가 함부로 간섭하거나 강요할 수 없다, 필요한 정보와 자료를 제공할 수는 있지만 어떤 입장이나 의견을 옳은 것으로 가르칠 수는 없다. 질문한 학생은 대답에 만족하지 못했다. 그 대답이 마치 나이든 선주민에 대한 교육을 정부가 포기하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질의응답을 옆에서 지켜보는 나에게는 그것이 동아시아의 권위주의적 또는 공동체주의적 전통에서 자란 학생과 서유럽의 자유주의적 또는 개인주의적 전통에서 자란 정치인 간의 쉽게 해소될 수 없는 시각차 같았다. 나 역시 독일 유학을 거치며 두 시각의 충돌을 몸소 느꼈다.

옳다고 믿는 것이 현실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러나 옳다고 믿는 바가 서로 다를 수 있으므로 그것을 현실로 옮기는 데에는 합의된 절차가 필요하다. 믿음은 그 근거가 무엇이건 간에 그 자체로 존중받을 만하다. 근대의 과학적 세계관은 믿음보다 의심을 더 중요한 가치로 여기지만, 의심의 끝에 결국 무언가를 믿지 않을 수 없는 만큼, 인간의 삶에서 믿음은 매우 중요하다. 자신의 믿음이 잘못된 것일 수 있다는 의심에서건, 자신의 믿음이 중요한 만큼 타인의 믿음도 중요하다는 생각에서건 간에, 믿음의 형성 과정에 강제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 서구 사회의 원칙이 되었고, 이것을 그 사회는 자유주의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런 자유주의 사회에서 무엇을 어떻게든 결정해 실행에 옮겨야 할 때 불가피하게 거쳐야 하는 과정을 민주주의라고 불렀다.

자유민주주의란 자신에 대한 의심 또는 타인에 대한 존중, 그리고 개인들이 모여 공동의 결정을 할 때 지켜야 할 최소한의 절차가 합쳐진 이름이다. 옳은 것을 실천하는 데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생각은 이런 자유민주주의 원칙과 충돌한다. 일단 그것이 옳은지 여부가 불분명하다. 예컨대 이주를 환영하고 이주민을 환대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가 자명하지 않다. 옳은 일이더라도, 그래서 환영하고 환대하도록 정부가 강제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자유주의 사회의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환영하고 환대하는 시민의 권리를 보호하고, 동시에 거부하고 반대하는 시민의 권리도 타인의 권리가 침해되지 않는 한에서 보장하는 것이다. 모든 시민의 권리는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한 최대한 동등하게 보장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자유를 위한 강제'라는 말이 있다. 예속된 사람을 자유롭게 하려면 강제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런 생각에 고무되어 프랑스혁명 이후 로베스피에르의 독재가 등장했고, 그의 공포통치는 결국 자신이 단두대에 서는 것으로 끝났다. 옳은 것을 실현하기 위해 일정한 강제가 불가피하다는 생각은 결국 자신에게도 남이 생각하는 옳은 것이 강제될 수 있다는 역설에 부딪힌다. 전쟁과 파괴적 혁명을 거친 뒤 서유럽 사회가 발견한 원칙이 바로 자유주의이고 민주주의이다.

옳은 이념을 정부가 강제로 실현하려 할 때, 그것이 자신의 평소 생각과 일치하는 경우 타당하게 느껴질지 모른다. 그러나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보면 그런 권위주의적이고 심지어 전체주의적인 태도는 자기모순임을 알 수 있다. 대한민국 사회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이미 변했다. 30%, 아니 60%의 동의가 있어도 정부가 함부로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 175년 전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에서 다수의 폭정을 우려했는데, 그 책을 심취해 읽었다는 대통령 치하에서 우리는 소수의 폭정을 우려하고 있다. 공진성 조선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이건어때요?
댓글0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