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칼럼> 성평등 없는 가족정책이 가능한가?

입력 2023.10.22. 13:43 수정 2023.10.22. 19:07 댓글 0개
김경례의 아침시평 광주여성가족재단 대표이사

정부는 2024년도 여성가족부 예산안을 1조 7천135억 원 규모로 편성했다. 규모로는 올해 예산인 1조 5천678억 원보다 9.4% 증가했지만 저출생 대응, 다양한 가족 지원 등 인구가족정책 예산이 상승된 결과로 성평등 인식문화 개선, 여성폭력 피해자 지원, 청소년 성인권 교육 예산 등 성평등(양성평등) 부문 예산은 사업 자체를 폐지, 이관하거나 통폐합 하는 방식으로 예산 삭감을 단행했다. 지난 9월에는 청소년 대상 '성 인권 교육' 사업비를 전액 삭감하고 해당 사업을 폐지하더니 내년도 '여성폭력 방지 및 폭력 피해자지원' 관련 예산을 142억 원이나 대폭 삭감하였다. 여성가족부 이외에도 2024년도 정부 예산안을 전반적으로 살펴보면 평등, 인권 등 인류 보편의 가치를 존중하고 복지 및 문화정책을 통해 다양성과 포용성을 실현하고자 하는 국가의 책무를 다할 의지가 있는지 의문스럽다. 성평등 관련 예산 삭감뿐만 아니라 사회적경제 예산 삭감, 사회서비스원 정부 예산 전액 삭감, 장애인 권리예산 삭감, 고용평등상담실 및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폐쇄, 민간단체 보조금 5천억 삭감, 문화예술 지원예산 삭감 등의 예산 편성안은 인권존중과 차별해소, 민관협치, 공공성 강화 등의 정책적 의지가 없음을 표명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여하튼 여성가족부의 가족정책 예산의 증액은 고무적인 일이다. 다만 저출생 대응 및 가족지원 정책이 성평등 정책의 뒷받침 없이 실현 가능한지는 따져보아야 할 일이다. 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클로디아 골딘 하버드대 교수는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성세대, 남성과 기업의 인식 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다. 결혼, 임신, 출산, 양육으로 인한 여성의 경력단절 문제와 노동시장에서의 여성의 낮은 지위와 불평등, 가사와 양육의 일차적 책임이 여성에게 있다고 여기는 성별고정관념이 해결되지 않으면 저출생 문제를 극복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특히 성별고정관념은 여성 경력단절의 주요 요인이며 여성경력단절은 다시 노동시장에서의 여성의 낮은 지위와 성별임금격차의 증가에 영향을 미친다. 청년층을 중심으로 가사와 양육을 분담하고자 하는 의식 수준은 높아지고 있으나 여전히 한국 사회의 가사 및 돌봄은 맞벌이 여부와 상관없이 60% 이상의 가정에서 '전적으로 또는 주로 아내가 가사와 돌봄을 하고' 있다('2021 양성평등 실태조사'). 또한 한국은 OECD가입국 중 성별임금격차가 가장 큰 나라이기도 하고 여성의 고위직 진출을 가로막는 유리천장이 가장 높은 나라이기도 하다.

즉 여성의 독박 가사 및 육아 문화 해소, 노동시장에서의 여성 지위 향상, 여성의 고용 지속성 및 안정성 확보 없는 저출생 지원정책은 실효성을 거두기가 어렵다. 가정과 학교, 기업, 사회에 성평등 인식 및 문화확산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실질적인 출산율 제고 및 가족친화 문화를 형성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정부는 '양성평등 조직문화 조성'사업 42.3% 삭감, 생활 속 성별 인식 격차 해소를 위한 '양성평등 및 여성 사회참여 확대 공모 사업'과 초·중·고 학생 대상'성 인권 교육'을 폐지하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부모급여, 아동 돌봄 등을 위한 현금지원 중심의 가족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독일도 우리나라처럼 성별분업에 기반한 현금지원을 중심으로 가족정책을 펼쳤던 나라이다. 독일은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저출생 대응정책을 늦게 수립하였지만 부모수당, 아동수당 등의 현금지원에 더해 가족정책의 기조와 방향을 획기적으로 전환함으로써 출생율 반등에 성공했다. 핵심은 성평등한 부부관계, 부모역할에 기반한 일·가정 균형 정책이었다. 부부가 함께 일하고 함께 양육하는 평등한 관계와 역할 분담에 기반해 정부는 근로시간을 단축해 가정에서 부모와 자녀가 함께 보낼 수 있는 부모시간을 확보하고, 마을과 국가가 함께 양육을 지원하는 보육 및 교육시스템 구축을 강화하였다. 아이를 낳은 이후의 지원만큼 아이를 낳기 좋은 사회적 환경을 조성하는 데 주력하였다.

성평등 인식과 문화 확산 없이 저출생 극복과 가족친화정책의 실현은 불가능하다. 또한 관계 부처의 권한과 예산 증액 없이는 불가능하다. 성평등 및 저출산 지원정책에 천문학적인 돈을 쓰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하지만 우리나라 가족복지지출예산은 독일의 절반도 안되며 사회복지 지출예산은 OECD평균의 3분의 2도 미치지 못한다. 성평등 정책 없는 가족정책은 불가능하다. 저출생, 돌봄, 다양한 가족 지원, 가족관계 개선 및 가족친화문화 조성, 폭력예방 등 모두 성평등 인식의 확산이 있어야 실현 가능하다. 김경례(광주여성가족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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